세상에는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by장예만

옳다, 그르다.

올바르게 살아야한다.

넌 왜 바르게 살지 못하느냐.

넌, 틀렸어.

난 도대체 왜 이럴까?


옳다는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현재도 상당히 많은 나라가 일부다처제이다.

일처다부제인 때도 있었다.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삼는 나라에서 볼땐 이보다 더 그른 일은 없다.


법.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규칙이 있어야 한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그래도 이건 옳다라고 말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의 법이 다 옳은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도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옳음을 말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의라 하고, 누군가는 상식이라 하며, 또 누군가는 법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옳음은 언제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대답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대답은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언어일 뿐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가 필요하듯,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따를 약속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강이 달라지면 다리도 달라진다. 시대가 바뀌면 법도 바뀌고, 나라가 달라지면 기준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법은 영원한 진리라기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잠시 세워 둔 길인지도 모른다.


장자는 나비가 사람꿈을 꾼건지, 사람이 나비꿈을 꾼 것인지 묻는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했지만, 깨어난 뒤에는 어느 쪽이 참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굳게 믿는 옳음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오늘의 확신이 내일의 웃음거리가 되고, 지금의 상식이 훗날의 편견이 되는 일은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옳고 그름을 말하는 일은 쉽지만, 그것을 내려놓는 일은 어렵다.

높은 산은 골짜기를 비웃지 않고, 깊은 바다는 시냇물을 가리지 않는다.

크다고 옳은 것도 아니고, 작다고 그른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눈은 세상을 보는 창일 뿐, 세상 자체는 아니다.

자신의 창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대신 판단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세상은 옳고 그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들이 흘러가는 하나의 강인지도 모른다.

강물은 스스로 흐를 뿐, 자신이 옳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람도 꽃도 구름도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끝없이 시비를 세우고, 그 경계 안에서 스스로를 가둔다.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세상을 뒤집어놓고 있다.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모두 자신들이 옳다고 하면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 기준이 확실히 옳다고 할 수 없음에도

자꾸 내 옳음이 나를 붙들려한다.


옳음을 붙잡으려는 손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곳에서는 이기는 사람도 없고, 틀린 사람도 없다.

다만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려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도 하나의 자리일 뿐이며, 내가 그르다고 여기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실은 내가 붙잡고 있는 답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답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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