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보면 길가에 아직도 장미가 피어있다.
조금씩 시들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꽃을 먼저 보지만, 나는 문득 가시를 보았다. 꽃을 지키기 위해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
그것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시는 꽃보다 줄기에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를 향하기 전에 이미 자기 몸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였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가시를 만든다. 서운함이 가시가 되고, 억울함이 가시가 되며, 이해받지 못한 기억들이 뾰족한 끝을 세운다. 처음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마음속에 작은 무기를 숨겨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그 가시들이 상대보다 나를 더 자주 찌른다는 사실이다.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심장이 먼저 무거워진다. 원망하는 기억을 되새길수록 내 하루가 흐려진다. 상대는 이미 잊고 살아가는데도 나는 오래된 상처를 품고 다시 아파한다. 가시는 상대에게 닿기 전에 내 마음의 살을 긁으며 지나간다.
그래서 증오는 불이다.
남의 집을 태우려고 들고 간 횃불이 먼저 내 손바닥을 데우듯, 원망은 품고 있는 사람의 영혼부터 지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벌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가시를 버린다고 해서 잘못을 잊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상처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내 마음에 내리는 해방일 수 있다.
성현들이 용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용서를 받을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마음속 가시를 키우는 대신 이해와 연민의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내 마음은 단단해진다.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 가시없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가시를 꽃보다 더 크게 키울 필요는 없다.
우리의 마음에도 꽃이 피어야 한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게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정을 나누면서
바람에도 기분 좋게
흔들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꽃이 되리라"
— 이해인 수녀님「봄 일기」 중
남을 향해 가시를 세우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려도 꽃으로 남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 때문에 가시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나는 아직 이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며 다시 마음을 다 잡아본다.
혹시 누군가를 향해 세워 둔 가시가 있는지.
있다. 있어. 이런... 조용히 그것을 내려놓는다.
가시는 나를 지키는 것 같지만, 오래 품을수록 나를 아프게 한다.
결국 가장 멀리 가는 사람은 가장 날카로운 사람보다 가장 가벼운 사람이다.
내 안의 가시를 놓아주는 순간, 비로소 마음은 꽃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