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77
하슬라.
처음에는 전기 자동차 테슬라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강릉 여행길이었다. 하슬라아트월드. 정동진 레일바이크 타고 난 뒤였다. 미리 짜둔 여행코스. 나의 스승 제나이(제다이 아니다. 제미나이에서 미를 뺀 이름이다)에게 물어본 결과 추천 여행지로 이름을 올렸던 곳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출 보려고 서둘렀기에 오전 10시 무렵 살짝 피곤했지만, 동치미막국수를 먹으러 가는 길 도중에 하슬라아트월드가 있길래 내친김에 별 기대 없이 들렀다.
그래서 통합 관람권보다 저렴한 데다, 정동진 레일바이크를 탄 관람객은 20% 할인해 준다는 일반 관람권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어디 한 번 둘러볼까 시큰둥하게 입장했더랬다. 그랬는데,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파스텔톤의 작품들과 창문 밖 동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진 풍경은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어랏!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곳곳이 포토존이었다. 독특하고, 신기한 작품들이 많았다. 게다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기가 막히게 잘 나왔다. 어머어머, 여기 봐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다섯 명이 두 명씩, 때로는 세 명씩, 마지막에는 독사진을 서로 찍어주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가게에는 열 살 쯤으로 보이는 딸과 어떻게 하면 이 위험한(?) 곳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한 아버지가 보였다.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아빠 이것 봐요, 너무 예뻐요, 나 하나 가지고 싶어요, 제발요를 계속 외치고 있었다. 애써 외면한 채 두리번두리번 아내를 찾는 아빠의 모습에 우리 내외는 웃음을 참으며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아슬아슬 높은 계단, 계단 사이로 동해의 푸른 바다가 아스라이 보이는 그곳을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 가며 간신히 지났다. 이윽고 바라본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린 듯이 상쾌했다. 그 동해 바다를 향해 고함지르듯이 서있는 조각상은 자유로워 보였다.
관람한 지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모를 정도로 이색적인 곳이었다. 차를 타고 나오는데 그제야 들어올 때 못 봤던 [하슬라는 강릉의 옛 이름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보았다. 아니 뭐라구, 하슬라가 그런 뜻이었다고? 고구려, 신라 때 하슬라라고 불렸다가 이후 신라 경덕왕 때 명주로, 고려 때 강릉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슬라는 빛나는 밝은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람이 참 웃긴다. 그러고 난 뒤 강릉 곳곳에서 하슬라가 많이 보였다. 뭐 좀 사갈까 들른 강릉중앙시장에서만도 두 곳이나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도 동시에 떠올랐다. 새롭고 알찬 하슬라 여행이었다. 테슬라를 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