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버즘나무

내맘대로 일기 75

byEAST

양버즘나무라고 했다. 버즘? 피부에 나는 그 버즘이요, 라고 물어봤다. 맞다고 했다. 나무껍질이 사람 피부병의 버즘*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며, 요 녀석은 서양에서 건너온 종(種)이라 양(洋)버즘나무라고 전기톱을 든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어째 플라타너스랑 비슷하네요. 물으니 잘 아시네요. 양버즘나무가 플라타너스예요, 라며 바구니같이 생긴 고소작업차 타고 까마득히 올라갔다. 이윽고 전기톱의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앵, 애애앵. 양버즘나무 가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사람 얼굴만 한 이파리도 사방으로 날렸다. 10분 남짓 지났을까, 양버즘나무는 뼈만 앙상히 남은 사람처럼 흰 가지만 허공을 찌르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웅장하던 모습이 순식간에 초라하게 바뀌었다. 저렇게 자르면 내년에 다시 싹이 틀까, 싶을 정도로 뭉텅뭉텅 잘린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군 입대하려고 머리 빡빡 민 아들 바라보는 어미 마음이 이랬을까.

11월의 양버즘나무. 잘리기 전 모습.

다 잘린 양버즘나무는 그렇게 겨우내 구도자의 모습처럼 두 팔 벌리고 묵묵히 서있었다. 입춘 지나고 한식 지나도 나무 끝은 잠잠했다. 그 사이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이제 5월도 중순, 넝쿨장미가 절정이고 나무의 연초록 이파리가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일교차가 아직 심하지만 한낮은 여름 날씨같이 더운 날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주 문득 양버즘나무를 보았다. 드디어 보였다. 나무 끝에 푸르스름하게 싹이 트인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창백한 가지 끝에 매달린 연초록 이파리들은 더욱 선명했다.

7월의 양버즘나무.



군대 첫 휴가 나온 아들처럼 반가웠다. 장장 6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 곧 끈질기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이파리들이 커지고 20m가 넘는 웅장한 모습을 되찾으리라. 그 오랜 세월 참고 견뎌낸 뒤, 화려하게 돌아온 양버즘나무를 보면서 나는 배운다. 양버즘나무는 말한다.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고. 흔들리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꿋꿋이 가라고.


오늘도 양버즘나무를 바라본다. 오늘은 다른 감정을 느낀다. 잘라도 잘라도 더욱 풍성해지는 이파리들과는 다르게 해가 갈수록 휑해지는 나의 머리를 한번 쑥, 손으로 만져본다.


*버짐이 표준어라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