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 가는 길

내맘대로 일기 73

byEAST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하거나 혹은 몸이 근질거리면 나는 산사(山寺)를 찾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산사로 통하는 오솔길을 찾는다는 게 맞는 말이다. 이 길을 찾을 때 나에게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거리. 사찰 대웅전까지 1~2km 이내일 것.

둘째, 시간. 되도록 오전일 것.

셋째, 혼자일 것.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기와불사도 하고 간혹 쭈뼛쭈뼛 대웅전 들어가 어색하게 합장기도 정도는 한다. 그런 내가 산사를 즐겨 찾게 된 것은 작은 오솔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내 안의 충만함 때문이다.


나무들이 깨어나며 뿜어대는 신비로운 기운을 들이마신다. 또로롱 졸졸 흐르는 개울물, 톡톡 토토독 떨어지는 열매, 휘리링 지저귀는 새. 이들의 삼중창이 굽이굽이 오솔길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몇 번, 단청 예쁜 일주문이 어서 오라 반긴다.


길 옆 쌓아둔 조그만 돌탑, 아슬아슬 절묘한 모습에, 갖가지 소원에 흐뭇하다. 나무 사이로 햇빛 들락날락 비치고, 거미줄같은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자벌레 길 가운데 대롱대롱 한가롭다.


이윽고 천왕문. 무서운 사천왕 못 본 척 지나 너른 앞마당에 다다르면 알록달록 연등 가득하고, 대웅전 처마 끝 풍경 소리 딸랑, 경쾌하다. 온 듯 아니 온 듯 경내 살짝 살피고 이제 내려간다.


내리막 가벼워진 발걸음에 콧노래가 거든다. 나뭇가지 주워 휘휘 휘두른다. 바깥세상은 멈춘 채 산속 나만의 시간만이 조용히 흐른다. 어느새 내 안은 비었다. 나는 모른다. 언제 비워졌는지. 하지만 산사로 가는 길은 언제라도 나를 받아준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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