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고 믿던 날의 코미디

영화 <낫씽 투 루즈>

by달빛바람

그날 휴대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병원 접수 안내.
배달 취소 알림.
카드 결제 예정 문자.
보험회사 부재중 전화.

정작 기다리던 연락만 끝내 오지 않았다. 아침에는 학원 원장이 이번 달 급여도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처음에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며 괜찮다고 웃었다. 두 번째도 이해했다. 세 번째부터는 날짜를 묻지 않았다. 기다린다는 말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그 무렵 알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오토바이에 올랐다.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배달을 했다. 그때 내가 지키려던 것은 성공도, 꿈도 아니었다.

월세가 밀리지 않는 것.
카드값이 연체되지 않는 것.

다음 달에도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확신 하나였다.

비는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골목이었다. 수십 번도 넘게 지나간 길이었다.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앞바퀴가 미끄러졌다. 오토바이가 먼저 쓰러졌고 몸은 그 뒤를 따라갔다. 아스팔트가 등을 긁고 지나가는 감각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도로 한가운데를 천천히 굴러가는 국물 용기였다. 뜨거운 국물이 빗물과 뒤섞이며 길 위로 번졌다. 잠시 뒤 구급차 안.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배달 취소. 보험 접수 안내. 병원 접수 문자. 나는 화면을 끄고 창밖을 바라봤다. 빗물이 유리창을 길게 흘러내렸다. 그날 이상하게도 사고보다 벨소리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몇 년이 흐른 뒤 스티브 오드커크 감독의 영화 〈낫씽 투 루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정신없이 웃었다. 성공한 광고회사 간부 닉은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믿는다. 절망한 채 차를 몰던 그는 우연히 좀도둑 T. 폴과 엮이고, 그 순간부터 영화는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납치가 납치를 부르고, 거짓말은 또 다른 오해를 만들고, 도망칠수록 상황은 더 커진다. 팀 로빈스는 끝까지 심각한 얼굴을 유지하고, 마틴 로렌스는 그 옆에서 쉼 없이 떠들고 농담을 던진다. 두 배우의 호흡은 정반대다. 그래서 더 웃기다. 한 사람은 세상이 끝났다고 믿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남으려 한다. 두 사람이 부딪칠수록 영화는 더 큰 웃음을 만들어 낸다. 예전에는 그 웃음만 보였다.

이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영화는 사실 액션보다 '오해'를 설계하는 영화였다. 감독은 관객에게만 진실을 보여 준다. 닉만 모른다. 우리는 한 걸음 앞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그래서 그의 선택이 빗나갈 때마다 웃는다. 하지만 닉은 한 번도 웃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날 병원에 실려 갔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사는 회복 기간을 설명했다. 나는 치료 기간을 듣지 않았다. 병원비부터 계산했다. 입원비. 생활비. 배달을 쉬는 동안 사라질 수입. 카드 결제일. 머릿속에서는 숫자만 계속 늘어났다. 그때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카드사 문자였다. 결제 예정 금액이 화면에 떴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의사가 설명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의사를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그날은 특별한 하루가 아니었다. 월급이 3개월 밀렸고, 비가 내렸고, 오토바이가 넘어졌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나씩 떼어 놓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하루 안에 모두 겹쳤다는 데 있었다. 사람은 사건 하나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여러 개의 걱정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밀려올 때 비로소 버티기 어려워진다. 나는 사고보다 다음 달을 먼저 걱정했다. 몸보다 통장이 먼저 떠올랐고, 회복보다 카드 결제일을 먼저 계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가장 크게 다친 것은 다리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런 날만 계속될 것이라고 너무 빨리 믿어 버린 마음이었다.

그 순간 문득 영화 속 닉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왜 그렇게까지 절망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하면 해결될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보니 닉은 현실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눈앞의 사실보다 먼저, 앞으로의 삶 전체에 결론을 내려 버렸다. 감독은 그 결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끝까지 웃음으로 밀어붙인다. 그 방식이 참 영리하다. 관객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닉이 엉뚱한 방향으로 달릴수록 웃게 된다. 반면 닉은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놓였는지 끝내 알지 못한 채 더 깊은 혼란으로 들어간다. 웃고 있는 사람과 웃지 못하는 사람이 같은 장면 안에 함께 존재한다. 그 묘한 간격이 이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감독은 그 간격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건을 점점 더 복잡하게 꼬아 간다. 잘못된 오해 하나가 또 다른 오해를 만들고, 우연은 연속해서 겹치며, 인물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앞으로 달린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액션보다 인물의 표정을 더 오래 보게 된다.

특히 팀 로빈스의 연기가 그렇다. 그는 끝까지 심각하다.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마틴 로렌스는 쉬지 않고 떠들며 분위기를 뒤집는데도, 닉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코미디 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진지함이 오히려 더 큰 웃음을 만든다. 좋은 코미디는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끝까지 자신의 결론을 믿고 행동할 때, 그 진심이 예상 밖의 웃음을 만들어 낸다.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총격전도 자동차 추격도 아니었다. 닉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치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는 위험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었기 때문에 달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병실에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험 처리 안내. 병원 예약 문자.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복귀 가능 예정일을 알려왔다. 휴대전화는 사고 전과 똑같이 울리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알림이 아니었다. 그 알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사고 전에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봐 불안했고, 사고 뒤에는 벨소리만 울려도 한숨부터 나왔다. 병실에서는 이상하게도 사고보다 다른 기억이 더 자주 떠올랐다. 사고 직전 가까운 사람과 나눴던 짧은 말다툼이었다. 별일도 아니었다. 서로 피곤했고, 서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말이 그날은 오래 남았다. 몸이 다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상처 난 무릎이 아니라 끝맺지 못한 대화였다. 사람은 위기를 만나면 현재의 고통보다 미뤄 둔 후회를 먼저 꺼내 보는 모양이었다. 며칠 동안 열지 못한 대화창이 하나 있었다. 커서는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깜빡였다.

'내가 미안.'

네 글자를 적었다. 잠시 바라봤다. 지웠다. 다시 적었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까는 나도 말이 심했어."

짧은 문장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사고는 그대로였다. 병원비도 달라지지 않았고, 카드 결제일도 그대로였고, 당장 일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하나만큼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미래는 전보다 덜 무겁게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은 현실보다도, 현실에 대해 너무 일찍 내려 버린 결론이라는 것을.

영화 속 닉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만 믿었다. 하지만 관객은 알고 있다. 그 사실이 틀렸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웃는다. 웃음은 닉을 비웃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진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결론을 미리 내려 버리는가.

'이제 끝이다.'

'여기까지다.'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다.'

시간은 아직 남아 있는데 마음이 먼저 마지막 장면을 써 버린다. 영화는 바로 그 성급함을 코미디로 바꾼다.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뒤, 그 웃음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닫게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이 영화는 액션보다 사람에 대한 영화처럼 보인다. 오해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얼마나 쉽게 미래를 단정하며, 또 얼마나 늦게 자신의 착각을 알아차리는 존재인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살다 보면 이런 개같은 날이 있다. 아침부터 모든 일이 어긋난다.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고, 밀린 월급 소식을 듣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고, 휴대전화는 쉬지 않고 울린다. 보험회사. 병원. 카드사. 배달 애플리케이션. 세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만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날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고만이 아니었다.

'이제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그 믿음이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결론은 사고보다 훨씬 오래 나를 붙잡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이 영화 〈Nothing to Lose〉는 지금도 많은 1990년대 액션 코미디들 사이에서 조금 다르게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총격전을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 하나에 얼마나 쉽게 갇힐 수 있는지를 웃음으로 보여 주는 영화다. 처음 봤을 때는 웃기만 했다. 지금 다시 보니,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이야기가 비로소 보였다.

퇴원한 뒤에도 헬멧은 버리지 못했다. 현관 한쪽에 그대로 세워 두었다. 왼쪽 옆면에는 아스팔트가 긁고 지나간 흰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그 흠집을 볼 때마다 사고가 떠올랐다. 넘어지는 순간. 구급차 안. 끊임없이 울리던 휴대전화. 시간이 흐르자 조금 다른 것이 보였다. 그 자국은 사고의 흔적이 아니라, 그날을 지나온 흔적이었다. 어느 날 다시 헬멧을 썼다. 시동을 걸고 골목 입구에서 브레이크를 한 번 천천히 잡아 보았다. 몸은 잠깐 긴장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얼어붙지는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머리보다 몸이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몸도 결국에는 다시 앞으로 가는 법을 배운다. 시간이 지나자 사고 이야기를 가끔 꺼내게 되었다. 병원 침대에서 카드 결제 문자만 바라보던 이야기. 도로 위를 국물 용기가 천천히 굴러가던 이야기. 구급대원보다 먼저 휴대전화를 찾았던 이야기. 그때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던 일인데, 지금은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조금씩 웃게 된다. 사건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나와 그 사건 사이의 거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좋은 코미디도 어쩌면 그런 일을 한다. 비극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대신 너무 가까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사건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 거리만 생겨도 사람은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다. 이번에 〈낫씽 투 루즈〉를 다시 보며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자동차 추격도, 총격전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믿었던 한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감독을 그것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웃음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바뀌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드문 코미디다. 젊었을 때는 사건을 따라 웃게 되고, 조금 더 살아 본 뒤에는 사람을 따라 웃게 된다.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줄거리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사람과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 작품도 내게 그런 영화였다. 예전에는 정신없이 웃고 끝났던 영화가, 몇 년 뒤에는 끝났다고 믿어 버린 하루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아마 앞으로 다시 보게 된다면 또 다른 장면이 마음에 남을지도 모른다. 변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삶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대신 너무 빨리 결론 내려 버린 우리의 하루 앞에서 이렇게 조용히 묻는다.

"정말 끝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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