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의 윤리와 응시의 거리

영화 <트위스터스>

by달빛바람

잔해의 윤리와 응시의 거리

-폭풍 이후를 바라보는 법

개요 액션 미국 122분

개봉 2024년 08월 14일

감독 정이삭 Lee Isaac Chung


1. ​Opening 오프닝


​영화의 시작과 함께 터져 나오는 대기의 비명, 그리고 요동치는 핸드헬드 카메라. <트위스터스>는 관객이 상황을 파악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재난의 심장부로 곧장 끌고 들어간다. 케이트(데이지 에드거 존스)와 동료들이 토네이도의 중심부에 흡수성 고분자 화학물질을 주입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실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통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인 ‘믿음’이자, 참혹한 실패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 대상을 향해 회귀하는 실존적 ‘집착’이다. 카메라는 대기의 소용돌이를 조망하기보다, 인간의 계측 장비가 무력하게 꺾이는 순간을 근접 촬영하며 인간 시선의 한계를 명확히 한다. 여기서 토네이도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바깥의 세계' 그 자체로 존재한다.



2. ​5년 후


​5년이라는 유예 시간은 케이트에게 망각이 아닌 정체된 반복을 선사한다. 뉴욕 기상청의 정교한 모니터 너머로 대기를 수치화하는 그녀의 일상은 안온해 보이지만, 실상 그 데이터들은 과거의 실패를 가리는 정교한 가림막일 뿐이다. 이해하지 못한 대상을 향한 실존적 부채감은 그녀의 미세한 눈빛의 흔들림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때 하비(안소니 라모스)의 제안은 과거의 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주인공을 다시 그 비극적 문제 속으로 끌어들이는 중개자이다. 케이트가 다시 오클라호마의 평원으로 향하는 이유는 영웅적 결단이라기보다 끝내 이해에 실패한 대상을 기어이 파악해 내려는 인간의 집요한 ‘반복’의 논리이다.



3. ​타일러

― 자연을 소비하는 방식


​현장에서 마주한 타일러(글렌 파웰)는 재난을 대하는 또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토네이도를 ‘콘텐츠’로 만들어 대중의 인기를 얻는 현대적 소비 구조의 선봉에 서 있다. 타일러가 트럭 위에서 불꽃놀이를 쏘아 올리며 폭풍의 위협을 환호로 바꾸는 장면은 자연을 경외의 대상이 아닌 카메라에 담길 하나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글렌 파웰은 호기로운 미소 뒤에 숨겨진 기민한 시선을 통해, 위험조차 연출 가능하다고 믿는 미디어적 낙관주의를 입체적으로 체현한다. 영화는 케이트의 ‘분석적 이해’와 타일러의 ‘엔터테인먼트적 소비’를 충돌시키며, 우리가 재난을 마주할 때 그 본질과 이미지 중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질문한다.



4. ​결코 구경거리가 될 수 없는 것


​이 영화가 전형적인 재난 영화의 문법을 넘어서는 지점은 스펙터클을 다루는 윤리적 거리에 있다. 일반적인 장르물이 파괴의 전시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때, 정이삭 감독의 카메라는 파괴의 순간 직후에 남겨진 사소한 것들에 주목한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주인을 잃은 신발과 무너진 가옥의 잔해를 비추는 롱테이크는 이 영화가 지향하는 ‘재난 윤리’의 정점이다. 카메라는 재난의 중심부를 향해 돌진하면서도, 그 파편이 튀는 현장에서는 경건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관객이 이를 단순한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못하게 차단한다. 스펙터클의 유혹에 매몰되지 않고 ‘바깥의 세계’가 남긴 상흔을 복원하려는 이 시선은 기술적 성취보다 값진 비평적 성과이다.



5. 스타일과 배우의 얼굴

-풍경이 된 인간, 그리고 남겨진 공백


​정이삭의 카메라는 대지의 호흡을 경유해 인간의 심연에 도달해 왔다. 전작 <미나리>에서 자연이 인물의 뿌리를 껴안는 수용적 토양이었다면, <트위스터스>의 자연은 인간의 기획을 무력화하며 생존을 시험하는 압도적 타자로 군림한다. 감독은 개인의 내밀한 기억 속에 머물던 시선을 광활한 오클라호마의 지평선으로 확장하며, 재난이라는 거대한 물리적 실체 앞에 선 인간의 뜨거운 투쟁을 기록한다.


​이 재난의 중심부에서 서사의 균형을 잡는 것은 데이지 에드거 존스의 얼굴이다. 드라마 <노멀 피플>에서 보여준 10대의 투명하고 미숙한 매력부터,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20대가 지닌 날 선 섬세함까지 폭넓게 변주해 온 그녀는, 이번에도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눈빛으로 장르적 속도감을 제어한다. 폭풍을 향해 질주하는 글렌 파웰의 신체적 에너지가 영화의 외피를 지탱한다면, 데이지 에드거 존스의 연기는 폭풍의 눈과 같은 적막한 슬픔을 자아낸다. 특히 마을 극장의 스크린을 찢고 나온 재난이 객석까지 침범할 때, 그녀의 얼굴에 서린 공포는 실재하는 고통을 마주한 인간의 숭고한 응시로 남는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이 장르적 관습과 충돌하는 지점은 못내 아쉽다. 그녀가 전작들에서 증명했던 그 서늘한 신비로움과 내면의 심연을 담아내기에 <트위스터스>의 외형은 지나치게 견고하다. 케이트의 내밀한 상처가 깊어질 무렵, 영화가 그 고독한 탐색을 멈추고 사건의 속도감에 몸을 맡기며 장르적 재미로 방향을 선회할 때 그녀의 존재감은 아쉬워진다. 특히 후반부에서 전형적인 대사들로 인물들의 감정을 급히 봉합하는 대목은 영화가 성실하게 쌓아온 긴장을 허망하게 이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난을 정복하거나 구경하는 대상이 아닌 우리가 공존해야 할 '압도적 바깥'으로 정의한다. 정이삭 감독은 거대한 스펙터클 속에서도 끝내 인간의 얼굴과 그 뒤편에 놓인 바카라임을 외면하지 않는다. 재난은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가 견뎌야 할 현실의 일부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의 시선은 이제 하늘의 구름 한 조각에서도 단순한 풍경 이상의 무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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