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뛸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땀복은 정말 땀을 잘 나게 했다
나는 내가 뛸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어느 날이었다. 계절은 가을이었나.
한동안 러닝을 해볼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사귀기 직전까지 갔던 사람과는 잘되지 않았고, 날씨는 슬슬 추워질 기미를 보였다.
나는 겨울에 유독 약하다.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짧아지면 마음까지 쉽게 가라앉는다. 그해에는 끝내 시작하지 못한 관계까지 겹쳐서였는지, 우울감이 급격히 몰려왔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들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넘겨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를 갔는지,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 보면 저녁이 다 가 있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었다.
그러다 문득 땀복이 떠올랐다.
일 년 전, 여름이 되기 직전에 새벽 배송으로 주문했던 상하의 세트. 그때도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샀을 텐데, 운동을 시작하는 것보다 옷을 주문하는 일이 훨씬 쉬웠던 모양이다.
‘아, 나 땀복 있었지.’
이상하게도 그날은 생각이 조금 더 이어졌다.
‘그거 입고 뛰어볼까?’
땀복을 꺼내 입었다. 핸드폰과 이어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달릴지, 몇 분이나 달릴 수 있을지는 정하지 않았다.
동네에는 달릴 만한 길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아는 길로 향했다. 이 년 전, 매일 밤 운동 삼아 동네를 크게 한 바퀴씩 걷던 코스였다. 어디쯤 가면 길이 꺾이고, 어디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지 알고 있었다.
막상 뛰려고 하니 조금 어색했다. 팔을 굽히고 자세를 잡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진짜 뛸 수 있나?’
몇 달 동안 나를 붙잡았던 질문이었다. 뛰면 너무 힘들 것 같고, 얼마 못 가 멈출 것 같았다. 러닝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들처럼 달리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발을 내디뎠다.
한 발, 또 한 발.
‘어?’
뛰어졌다.
‘생각보다 그냥 뛰어지네?’
조금 우스웠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횡단보도 초록불이 십 초도 남지 않았을 때는 전력으로 달렸다.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보고도 뛰었고, 지하철 문이 닫힐까 봐 계단을 뛰어 내려간 적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달릴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타야 하니까 뛰었고, 건너야 하니까 달렸다.
그런데 운동으로 달리려고 하니 갑자기 자격이라도 필요한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러닝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 나가면 오래 달려야 하고, 중간에 멈추면 제대로 운동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시작하기도 전에 머릿속에 조건을 잔뜩 붙여놓고는, 그걸 해낼 자신이 없어서 미뤘다.
물론 막상 달려보니 힘들기는 했다.
백 미터쯤 뛰었을까. 금세 숨이 가빠졌다.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다가 조금 걸었다. 호흡이 가라앉으면 다시 뛰었다. 그러다 힘들면 또 걸었다.
내가 상상했던 러닝의 모습과는 꽤 달랐다. 일정한 속도로 멋지게 달리는 대신, 얼마 못 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걷다 보니 다시 뛸 만했고, 뛰다 보니 또 쉬어야 했다.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첫날, 삼 킬로미터가 조금 안 되는 거리를 갔다.
그 거리를 전부 달린 것은 아니었다. 여러 번 멈췄고, 꽤 많이 걸었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꾸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오래 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당장 내일도 나올 수 있을지는 몰랐다. 다만 조금 전까지는 막연히 못 할 거라고 여겼던 일을, 내가 직접 해봤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날 밖에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달리기를 못한다고. 체력이 안 된다고. 조금만 뛰어도 힘들어서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고.
백 미터마다 멈추는 나를 보고 역시 못 한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숨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뛰었다. 조금 쉬면 더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 처음 알았다.
나를 믿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잘할 거라고 확신할 필요는 없었다. 밖으로 나갈 때도 의심했고, 뛰기 직전에도 의심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볼 기회를 줬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바로 그만두게 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믿어주는 일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저 못하겠어요.”
“저는 이미 틀렸어요.”
“안 돼요. 포기할래요.”
누군가 그렇게 말할 때, 그 말만으로 그 사람의 가능성까지 판단하지 않는 것. 잠시 멈춘 모습을 보고 여기까지인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
당장 더 뛰라고 등을 떠밀기보다 숨을 고를 시간을 주고, 다시 해보겠다고 할 때 여전히 곁에 있는 것.
믿는다는 말 한마디도 힘이 되겠지만, 잘되지 않는 순간에도 거두지 않는 믿음은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나조차 나를 못 믿겠는 날, 누군가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움직일 힘을 줄 테니까.
그날 나에게는 그런 믿음을 건넬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그 역할을 해줬다.
백 미터를 뛰고 멈춘 나에게, 조금 쉬었다가 다시 가도 된다고.
나는 내가 뛸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은 채 그렇게 정해두고 살았다. 그날은 달라서, 대답을 미리 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숨이 차면 걸었고, 괜찮아지면 다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