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라는 말이 싫었다

Just Do It, 소개팅 남자의 한마디, 러닝을 통해 달라진 생각

by네시의 김가을




그냥 하라는 말이 싫었다.

나이키의 Just Do It, 소개팅 남자의 한마디, 러닝을 통해 달라진 생각



Just Do It. 그냥 해.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슬로건이다. 단 세 단어로 이루어진 이 문장은 수많은 사람에게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참 싫었다. 그냥 하라니. 누군 하고 싶어서 안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먼저 떠올랐다. 시간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지금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조금 더 준비하고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막상 준비하려고 보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냥 해. 하면 되잖아.”


그 말이 어찌나 무바카라임하게 들리던지.


그냥 해서 될 일이었으면 진작 했겠지.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누가 고민을 하고, 누가 실패를 두려워하겠는가. 사람마다 처한 상황도 다르고 감당해야 할 현실도 다른데, 그 복잡한 사정을 단 세 글자로 정리해 버리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물론 입 밖으로 전부 꺼내지는 않았다.

“아, 그렇죠. 해야죠.”


적당히 웃으며 대답한 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고민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보다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정말 몰랐던 것은 그 일을 해내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시작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스물아홉 무렵이었을까.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었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이제 희미하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 한 장면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나는 당시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제법 신나게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으며, 나름대로 알아본 것도 있다는 이야기였다.말을 꺼낼 때만 해도 좋았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계획에는 언제나 가능성이 넘쳤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근데 이걸 하려면 일단 준비해야 할 게 좀 있거든요. 지금 회사도 다니고 있으니까 시간이 애매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무작정 시작하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하나를 설명하니 다른 문제가 따라 나왔다. 그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니 또 다른 걱정이 생각났다. 나는 어느새 하고 싶은 일보다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더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참 듣고 있던 남자가 답답하다는 듯이 콧 웃음 치며 애써 피식 웃었다.


“아, 그냥 하면 되잖아요.”

“네?”

“그냥 해요. 하고 싶으면.”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내가 길게 늘어놓은 고민이 그에게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 짧은 헛웃음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한심하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걸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불쾌했다.


당신이 내 상황을 얼마나 안다고.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는지, 어떤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내 계획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해보라고 했다.


그저 그 말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어떻게 되었더라. 아마 몇 번의 연락이 더 오갔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잊었는데 그가 했던 말은 남았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나는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는 데 익숙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여러 가능성을 따져보고,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 검토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 두는 편이었다. 나는 그런 태도가 신중함이라고 믿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 살아가다 보면 무작정 시작해서는 안 되는 일도 분명 있으니까


다만 돌이켜 보면 내가 신중하다고 부르던 행동 중에는 단순히 실패하기 싫어서 미뤄둔 일도 적지 않았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시도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확인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은 언제까지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으로 남는다.나는 그 가능성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나.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나.


지금은 여러 사정 때문에 잠시 미뤄두고 있을 뿐인 나.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 싶은 일은 늘어났는데, 정작 내가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열심히 살았다.


회사에 다녔고, 맡은 일을 해냈고, 매달 월급을 받았다.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 지난 몇 년 동안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무엇을 해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달리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했다. 무려 반년 동안.


러닝화를 신고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퇴근 후 한강을 달리고, 주말 아침에는 조금 더 먼 곳까지 뛰어보는 생활. 생각만 해도 꽤 근사했다.


하지만 곧 익숙한 생각들이 뒤따랐다.

내가 뛸 수 있을까?


걷는 것도 아니고 달리기인데, 얼마나 힘들겠어.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지 않을까? 괜히 시작했다가 금방 포기하면 어떡하지? 달리기를 해본 것도 아니면서 나는 이미 달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러닝을 시작한 사람들은 조금씩 달리는 거리를 늘려갔고, 나는 여전히 러닝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누군가의 대단한 성공담을 본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강한 의지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생각만 할 건데?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부터 잘 달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힘들 것 같았고, 금방 멈춰 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모든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여 보고 싶었다. 달리기 시작하자 예상했던 대로 숨이 찼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다리는 생각만큼 가볍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근사한 러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나는 뛸 수 있는 사람 이었다."

나를 믿고, 그냥 했다. 정말로 이것이 저스트 두잇인가?


이상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기록을 세운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멀리 달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제까지 뛰지 않던 사람이 오늘은 뛰었다. 그뿐인데 기분이 묘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달려보고 싶어졌다. 그다음에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오래 버텨보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달리기 전에 '할 수 있을까'를 묻는 대신,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성취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도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니까.






하지만 그동안의 나는 성취감을 대단한 결과 뒤에 따라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남들이 인정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것.


그런 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달리기는 조금 달랐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달린 것.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 조금 더 버틴 것.

무엇보다 시작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대신 실제로 시작했다는 것. 그 사소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믿게 되었다. 믿음이 먼저여서 달릴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달렸기 때문에 믿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제야 오래전 소개팅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해요. 하고 싶으면.”


그 남자의 말투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날 내 고민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웃음도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만큼은 이제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그냥 해'라는 말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드시 성공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그 말은 이렇게 들린다.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머릿속에서 아무리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도, 실제로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다고. 그리고 때로는 그 경험이 나에 대한 생각까지 바꿔놓는다고.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나는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보다 훨씬 가진 것이 적었고, 세상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던 시절. 강원도의 작은 산골에서 자란 나는 도시가 좋았다. 높은 아파트와 복잡한 거리,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풍경이 내게는 성공한 사람들의 세계처럼 보였다.


나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단순히 놀러 가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어린 마음에 서울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장소였다.


그때의 나는 성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그저 성공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참 이상하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에 있었는데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 앞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망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의 무대미술 관련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준비를 시작했던 것도 그랬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충분히 알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데도 일단 해보고 싶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실패할 이유를 촘촘하게 계산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두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라, 두려움보다 원하는 마음이 더 컸던 걸까.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때도 분명 서툴렀을 것이고, 무모한 선택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궁금해졌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 하던 아이는 언제부터 해보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는 어른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사이에 흘러간 10년 동안,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아직 답은 모르겠다.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조금 움직여 보고 싶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날처럼.

일단, 해보면서.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