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가락 위에 앉은 설움

전라도 욕

by은파랑

판소리는 전라도 바닷가의 무가에서
싹이 텄다고 전해진다.

18세기에는 하층민과 중인이 먼저 즐겼고
19세기에는 양반의 귀로도 건너갔다.
마침내 모든 사람의 노래가 되었다.

전라도 말은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다.
말씨가 부드럽고
말마다 길고 짧은 장단이 있다.

연구자들은 말한다.
부드러움이 해학과 여유로 이어지고
말속에 한이 녹아 판소리가 되었다.

그러니 이 땅의 설움은
내지르는 법보다
가락에 얹는 법을 먼저 배웠다.

욕도 그랬다.
억울함이 목까지 차오르면
한 번에 터지지 않고
늘어졌다 조여지고
올라갔다 풀어졌다.

"겁~나게", "포도~시"
말끝이 길게 휘어지는 동안
뾰족하던 마음도 조금씩 둥글어졌다

'흥부가'에서 놀부의 심술 앞에
소리꾼은 칼 대신 웃음을 꺼내 들었다.
풍자와 해학은 욕이 칼이 되기 전에 건네는 다른 얼굴

날것의 욕은 한 사람을 겨누지만
가락이 된 욕은 듣는 이를 모두 부른다.

혼자 삼키던 설움이
여럿이 함께 웃는 소리가 된다.

한은 눌러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풀어서 보내는 것

욕도 시가 된다는 것은
욕이 고와진다는 뜻이 아니라
아픔이 사람들 앞에 앉을자리를 얻는다는 뜻

가락을 만난 설움은
더 이상 누구를 찌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건네는 노래가 되었다.

은파랑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은파랑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은파랑은 얘기꾼입니다.

5,39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1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5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웃는 얼굴 뒤의 낮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