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먼저 말하는 것

by은파랑

1862년, 파리의 병원
의사 뒤셴은 노인의 얼굴에 전극을 대고
웃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오래 들여다보았다.

입꼬리만 올리는 웃음이 있었고
눈가까지 번지는 웃음이 있었다
그는 눈가에 주름이 이는 쪽이 진짜라고 적었다.

입은 꾸밀 수 있어도
눈 둘레 작은 근육은
마음이 움직여야 비로소 따라 움직였기 때문

그러니 웃음은 말보다 정직했다.
말은 마음을 지나 입으로 나오지만
진짜 웃음은 마음에서 곧장 얼굴로 번져 나왔다.

미소(微笑)라는 말
작은 웃음, 소리 없이 번지는 웃음

작아서 눈에 띄지 않고
작아서 오래 남는다.
큰 약속은 잊혀도 작은 웃음은 하루를 건너온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말은 마음 심부름꾼인데
마음이 먼저 도착해 있으면 심부름꾼은 쉬어도 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있지만
네가 웃는 순간 얼굴은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문장

나는 문장을 받아 적지 못하고
읽고 또 읽으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좋아진다는 말
네가 좋아지고, 내가 좋아지고
좋은 쪽으로 사람이 기운다는 말까지 모두 그 안에 있다.

너의 웃음 곁에서 나는
성급한 말을 거두고
서툰 손을 조금 느리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은 고백이 닿는 자리가 아니라
웃음 하나에 내가 환해지는 자리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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