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찰스 다윈은
웃음과 분노와 두려움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한 표정 앞에서 오래 펜을 멈추었다.
그는 그것을
가장 독특하고 가장 인간적인 표정이라 불렀다.
얼굴이 붉어지는 일
먼 나라에서 편지가 건너왔다.
피부색이 달라도 붉어졌고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도 붉어졌다.
거울을 본 적 없는 얼굴도
남의 눈길이 닿으면 붉어졌다.
말보다 먼저
뺨이 대답한다.
숨기려 할수록
더 붉게 대답한다.
부끄러움이 스치면
교감신경이 불을 켜고
아드레날린이
혈관의 문을 두드린다.
다른 곳의 혈관이 잠잠할 때
얼굴의 혈관만은
두드림에 문을 활짝 연다.
얇은 살갗 아래
촘촘히 엮인 모세혈관으로
피가 한꺼번에 밀려 올라와
뺨은 등불처럼 켜진다.
뺨에서 귀 끝으로
귀 끝에서 목덜미로
목덜미에서 가슴께로
붉음은 노을처럼 번져 내려간다.
2009년,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은
실수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재어보았다.
붉어진 얼굴을 본 이들은
더 쉽게 용서했고
더 깊이 믿었다.
붉음은 들키는 일이 아니라
건네는 일
미안하다는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사과
나를 알아달라는 말보다
먼저 피어나는 고백
감추면 번지고
덮으면 번지고
모른 척하면 더 번지고
번질수록 나는 투명해진다.
이름을 잘못 부른 순간
박수 속에서 혼자 넘어진 순간
좋아한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던 순간
입술은 끝내 다물었지만
얼굴은 이미
다 말해버리고 있었다.
말보다 먼저
뺨이 대답한다.
숨기려 할수록
더 붉게 물든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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