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아닌 '생존'의 기록, 53년을 걸어온 한 사람의 이야기
열일곱 살 행원에서 월스트리트까지, '평을' 신동기 저자와 보낸 포트럭파티 북토크의 저녁
신동기 저자의 호가 '평을'이라는 이야기는 나도 북토크 현장에서 처음 들었다. 평생 '을'로 살아온 인생이라 스스로 지은 호라고 했다. 웃음이 나오다가, 이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짧은 두 글자 안에 53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커리어 서바이벌』은 열일곱 살 소년의 첫걸음에서 시작한다.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를 들고 부산은행 말단 행원으로 출발한 그는 월스트리트로 건너갔고, 글로벌 투자은행의 경영진 자리까지 올랐다. 그 사이 열두 번 명함을 바꿨다. 뱅커스 트러스트, 도이치은행, 골드만삭스.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곳들이지만, 바카라장을 넘기다 보면 오래 남은 것은 그 화려함이 아니었다.
저자는 '성공'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성공은 때로 결과만 보여주지만, 생존은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견뎌야 했던 고통과 선택, 실패와 재도전의 시간을 함께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키며 어떤 순간에 다시 일어섰는가 하는 점이다. 이 바카라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한다.
저자는 결핍을 원망하지 않았다. 열일곱에 슬롯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불리한 출발점이었겠지만, 그는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바꾸었다.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다시 도전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도 주저앉지 않고 다음 기회를 찾아 나섰다. 어제까지 나를 인정해 주던 조직이 오늘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 나를 떠났다고 해서 나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경쟁력은 자리를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자리가 사라져도 다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 도전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일흔의 나이에 그는 사모펀드를 경영하고, 법률 자문을 하며, 새로운 창작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일흔은 인생의 황혼일지 모르나, 그에게는 또 하나의 아침처럼 보였다. 나이를 먹는다고 사람이 늙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멈추고 도전을 포기할 때 비로소 마음이 늙는 것이리라.
이날 북토크는 그런 저자를 '평을'이 아닌 주인공으로 모시는 자리였다. 각자 음식을 하나씩 들고 와 나누는 포트럭파티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참석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한 참석자의 후기는 특히 감동적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런 문장을 곱씹었다. 명함에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사람의 가치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온라인 게임에는 정년이 있지만, 배움과 도전에는 정년이 없다. 인생의 마지막에 얼마나 많은 명함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하루였다.
평생 '을'로 살았다던 사람이 이날만큼은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앞으로의 100년 인생이 그의 말처럼 또 하나의 아침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이 바카라이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작은 용기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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