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세상에도, 우리의 육아는 계속된다.
육아에 지친 3년 전 어느 날, 간만에 자유 남편의 시간이 주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사는 얘기들을 했다. 친구는 최근에 임신했고, 나 또한 와이프와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육아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런저런 육아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내게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지금의 지구는 환경오염이 심해져서 2050년에는 멸망할 거래.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만약 지금 내가 아이를 낳아도 30살도 안 돼서 지구는 사라지는 거잖아? 그런데 아이를 가지다니.. 나 잘한 걸까?"
지구 멸망 시나리오는 워낙에 뉴스를 통해 익히 들어왔으니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환경오염이 심하구나, 좀 더 신경을 쓰고 살아야겠다 정도 생각은 해봤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이렇게 짧은 시간 지구에서 살다가 지구에서 인류가 멸망한다고? 내가 산 시간만큼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지? 죽는다고?
나의 예민 모드는 나를 깊은 불안함으로 뒤덮었다. 안 그래도 이미 지구온난화는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했는데, 2040년쯤 되면 지구가 불덩이가 되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들도 줄어들 테고, 그러면 서로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싸울 테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길바닥으로 몰려날 테고, 2045년이 되면 그마저도 어려워지고.... 그러다 하나씩 사람들이 죽어가고... 머릿속에 장면들이 마치 실제로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마냥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기에는 내 나이도 꽤 어린 편이다. 주변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지인들이 아주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일들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멸의 삶을 살아갈 것처럼 하루를 허투루 보내기도 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술을 왕창 먹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공간이 조금씩 무너져서 어쩔 수 없이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그나마 나는 한 40여 년 이것저것 많이 보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만나왔다. 2050년에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내 나이 일흔쯤이라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2050년이면.. 서른살까지도 못 가볼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2050년 지구 멸망론을 접한 2023년, 첫째는 4살이 되었다. 혼자서 다다다다 뛰어다녀서 어른들을 졸졸 쫓아다니게 하기도 하고, 봄에 핀 꽃 한 송이,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우와~" 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호기심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 내가 사는 나이까지도 세상을 겪어보지 못하고 인류가 멸종한다면...?
이제 막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할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 인류가 환경 파괴로 인해 스스로 멸종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꽤 오래전부터였는데, 그런 걸 알면서도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은 게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 같았다. 꽤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니 한번 육아의 세계에 들어가 보자고 했던 인간의 수명주기에 괜히 발을 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봐도 지구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은 어디에도 없다. 이미 지구온난화의 속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손을 떠났다는 칼럼을 보면 무기력함에 눈을 돌리고 뉴스 창을 살며시 닫는다. 폭염, 폭우, 폭설, 강추위가 이어질 때면 앞으로 이러한 극단적 기후의 사이클은 더더욱 심해져서, 인류가 구축한 도시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나 하나의 힘으로 빨대를 안 쓰고, 재활용 컵을 써본다 한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환경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변덕이 심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소중한 것들을 함께 찾았다.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기 어렵겠다 싶은 날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늘로 가서 물놀이를 즐겼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만나는 그늘에 앉아 아이와 함께 먹는 과일, 그리고 물놀이터에서 총싸움하고 그 더운 날 우리는 너무 시원하다며 덜덜 떨기도 했다.
유난히 춥던 겨울, 그리고 폭설로 집 앞에 나가기도 힘든 날은 아이에게는 문 앞부터 놀이터의 시작이었다.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고, 집 앞 경사로에서는 썰매를 가지고 나가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썰매를 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카펫 위에서 누워보기도 했고, 빨개진 두 볼로 집에 들어와서는 며칠 동안 콧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즐거웠는지 눈 오는 날을 여전히 기다린다.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나 또한 알려주고 싶은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느낌만은 그대로 남아있는 첫사랑에게 전달해 주던 화이트데이 츄파춥스 사탕 하나, 대학교 때 맨 뒷자리에서 수업을 듣다 몰래 가방을 챙겨 나와 잔디밭에 누워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여유로웠던 하늘의 구름, 내가 정말 사랑하던 축구팀의 우승 순간 코끝을 스치던 잔디의 냄새와 함성소리, 우렁차게 울던 첫째를 만났던 분만실 앞의 순간.....
아이에게는 나와는 다른 것들로 삶의 소중한 시간이 채워질 것이다. 아직 너무나 작은 이 아이의 삶에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나와 와이프의 가장 빛나는 조각을 아이에게 전달했다. 아이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채워나갈 테다. 그 속에서, 아이도 내가 만났던 그 소중한 순간들을 오롯이 느끼고, 담아갔으면 좋겠다.
어떨 때는 삶이 힘들고, 넘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은 온전히 쌓여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인류가 더 이상 살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함께 그렸던 기억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2050년까지 생각하기엔 당장 앞에 닥친 일들이 꽤 많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아, 맞다. 내일 첫째 어린이집에서 소풍 가는 날이다. 간식이랑 음료수 싸가야 된댔는데, 집에 없네. 마트 같이 갈까?" 나는 현실로 돌아왔고, 2050년의 어느 날이 아니라 내일 소풍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트에 가는 김에 또 하나의 닥친 일, 저녁 반찬거리도 양손 가득 사 왔다.
그날 오후, 하원하러 가서 만난 첫째를 평소보다 좀 더 꼭 안아줬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것은 지금의 확실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주고, 바카라을 읽어주고, 옆에서 사랑의 얘기를 들려주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불을 덮어줬다. 거실로 나오니 임신한 와이프가 소파에 누워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와이프를 조심히 깨워 안방에 편히 눕혀줬다. 2050년은 모르겠지만, 오늘 밤 우리 집은 내가 지켜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도, 친구도 모두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나의 둘째와 친구의 첫째는 어느새 4살이 되었고, 그 친구는 둘째를 뱃속에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을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고 친구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몇 년 전에 나눈 '2050년 인류 멸종'에 대한 얘기를 다시 나눴다. 둘 다 마주 보며 "뭔 쓸데없는 소리야…." 하고 웃어넘기고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는 애들이 콧물이 나서 병원 갔다가 저녁 차리려면 바쁘겠다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