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귤껍질 편지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한다,라는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말을 들었어요. 가득 가진 부자가 하나 더 가지려 애쓰는 이야기를 성경에서인가, 동화에서인가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부족한 것에 하이라이트를 켜지 말고, 가진 걸 새롭게 보고 싶은 요즘이에요. 사방팔방으로 관심사를 확장하느라, 지금은 쥐고 있는 것도 손아귀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거든요.
이번 주는 머리를 했고, 실리카겔 같다, 한로로 같다는 알 수 없는 피드백을 들었어요. 아무튼 인디밴드하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였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므로, 칭찬으로 듣기로 했어요. PT 체험을 받고, 발레 수업도 해보고, 지인 따라 크로스핏도 가보기로 했어요. 3개월 전보다 근육 1킬로가 늘은 거 있죠. 엄청 뿌듯해요.
이번 귤껍질 편지부터는 카테고리를 다각화해보려고요. 글의 마지막에 좋았던 바카라, 음악, 전시 같은 걸 소개할게요.
(왠지 동글동글 낙서, 알록달록한 가림막, 구석에 웃고 있는 석상까지 전반적으로 귀여운 풍경이라 찍어봤어요.ㅎㅎ)
약 2주간의 일정이에요. (호로록 보셔요!)
8/16 건강한 발효빵의 세상 ‘오커쇼어’ 간 날
8/17 친척 모임
8/18 발레 체험
8/19 어쩐지 조금, 망한 머리 복구
8/20 꽃꽂이 체험
8/21 사내 행사 준비 (일일 파티플래너~)
8/22 대학시절 친구 결혼식, 갤러리 카페 '미사장', 왕십리 IMAX '오디세이'
8/23 전시 '푸투라 서울 :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
8/24 하루 4번의 운동, PT 체험
8/25 오로시 아이스크림
8/26 '헬스키친' 뮤지컬
8/27 말차 만들기
글이 사랑스럽다가, 와 엄청 재미없네, 싶다가 그래요. 수많은 자아들이 인사이드아웃처럼 와글와글 목소리를 내요. 근데 그래도 일단 쓰려고요. 아니면 시간은 너무 빨리 가고, 당장 어제, 당장 저번주 뭘 했는지 금세 가물가물해지겠죠. 나라도 내 삶을, 내가 이곳에 숨 쉬고 살아있었음을, 마구 튀어나오는 생각과 마음에 휩쓸리며 그럼에도 좋은 마음으로 그날을 마무리했음을, 알아줘야죠.
집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풀어볼게요.
ch1. 나는 곧, 타자의 눈으로 본 타자
푸투라 서울에서 하는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라는 전시를 보고 왔어요. 나는 타자의 눈으로 본 타자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다른 이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한다는 거예요. 또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도 같은 경험을 한 이가 있고, 새까만 심연같이 막막한 고민도 나만 당면한 것은 아닐 거예요. 이런 연결감 속에서 집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전시였어요.
삼면이 거울로 된 방, 뒤집어진 바카라이 빼곡하게 채워진 서재, 무수한 새와 곤충 그림들 사이를 걸으며, 공간으로 소리로, 함께 관람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생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ch2. 집으로 가야 하는 이유
서로 다른 경험에서 연결지점을 찾는 걸 좋아해요. 오디세이에서 10년간 집에 돌아가려 해요. 푸투라 서울의 전시는 집이라는 감각은 어디서 오는지 물어요.
저의 집은 아무래도 20여 년을 머문 목동이 떠올라요. 그다음으로는 천안이에요. 서울에서는 왠지 평생의 집음 없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광덕산 골짜기 시안하우스는 일평생 우리 가족과 함께할 것만 같아요.
또 정말 서류상 나의 집, 광명집도 빠지면 서운해요. 온전히 내 것, 내가 바카라임져야 할 첫 공간이에요.
오디세이에게 집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10년간 떠돌더라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었잖아요. 나의 안위를 전할 사람이 있는 곳, 바카라임져야만 하는 곳, 그리워 한 번은 꼭 다시 보아야 하는 곳 등등 여러 가지 의미 중 무엇이 가장 컸을지 생각해 봐요.
ch3. 자연을 공간에 들이는 법
최근 아주 탐나는 카페를 찾았어요. 말 그대로 내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죠. 특히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녹지를 향해 난 창이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광덕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가 비 오는 날의 풍경인 것 아시나요? 풀과 꽃의 색과 향이 진해지고, 창을 빗방울이 두드리고, 물줄기가 테라스로 떨어져 부서지는 모습이 눈에 선해요.
마침 비가 오는 날에, 운동화가 잔뜩 젖은 채로, 아무 커다란 카페나 찾아서 들어간 곳에서 이 뷰를 다시 만났어요. 광덕산에만 있어, 그 정도는 가야 볼 수 있어,라고 생각한 초록빛 풍경이었어요.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해도 그저 좋은, 머리가 비워지고 축축한 발을 잊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친구와, 카페에 나란히 앉아 행인들을 구경하는 파리의 할머니들처럼, 옆으로 앉아서 혼잣말을 하는 듯, 대화를 하는 듯 속 이야기를 길어 올렸어요. 어쩌면 가장 기쁜 행사지만, 또 지금 나이에는 하나의 과업이자, 약간의 인사치레로도 여겨지는 결혼식을 다녀온 길이었죠.
식장과 뷔페에서 음식을 고르고, 먹으면서는 온종일 일에 대해, 싫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풍경 앞에서는 일이 사라지고, 주인공 같은 굵직한 사건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근데 무지 중요한 지금 흘러가는 마음들과 작은 삶의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광덕산 시안북스테이에 머물고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잠을 참 잘 잤다고 말해요. 과업과 멀어지는 것, 중요한 맥락에서 빗겨서 서 보는 것이 어쩌면 삶을 편안한 속도로 흘러갈 수 있게 해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미사장, 이라는 카페인데 한 번 가보세요 ㅎㅎ)
다음으로는 이번 주 저의 작은 화두들을 풀어볼게요.
ch4. 몸을 조각하는 사람들
먼저 자축의 시간이에요! 근육량이 표준 100을 찍었어요. 자정이 다가온 시간인데, 냅다 사촌들이 있는 톡방에 자랑했어요.
100프로가 되면, 여기부터는 근육량 키우는 게 막 쉽지는 않대요. 있는 근육을 요모조모 밖으로 빼고 모양을 잡으며 눈바디를 측정할 때라고 했어요.
내 몸을 내 취향으로 조각해 갈 수 있다니, 왠지 사이보그 같다는 오버스러운 생각도 해봤어요. 인바디를 재면 매번 혼났는데, 이번엔 칭찬을 들어서 엄청 뿌듯했어요.
ch5. 이 정도는 이제 가뿐해,라는 기분 좋은 착각
사내에서 대외활동 운영을 하는데, 이제 n년차가 되어 능숙해졌어요. 어디서 그렇게 느꼈냐, 하면 그냥 뭘 해야 할지 어느 정도 걸릴지 각이 나오더라고요. 거만해져서 미루다가 당일에 강제로 무척 부지런을 떨긴 했지만요.
그래도 여전히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일은 변수가 있고, 여전히 뚝딱거리는 부분도 많을 거예요. 실제로 저는 처음부터 별 긴장감 없이 한 줄 알았는데, 몇 년 전 처음 행사를 진행할 때 제가 부들부들 떨었다는 증언을 들었어요.
그럼에도 중요한 건, 제가 좀 더 담대해졌다는 거예요. 예전엔 전날부터 해낼 수 있을까, 마음이 두근두근했어요. 커다란 강당에서 상무님을 모시고, 제가 면접을 보고 뽑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해요. 이제는 이 정도 규모와 사람들 앞에서는 끄떡없어요.
(거리를 걷다가 만난 풍경이에요. 설렁설렁 심은 듯한 꽃나무도, 신호등도, 그 뒤 노을과 전봇대 뒤 자전거도, 모두 왠지 정겨웠어요.)
엄마는 종종 <토지>를 읽었던 시간을 이야기해 줘요. 읽어내리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근데 또 앞으로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하루 몇 장! 딱 정해두고 그만큼만 읽었다고 했어요. 자체 마시멜로 테스트 같은 이 시간이 얼마나 달콤했을지 가끔 생각해 봐요.
저도 가끔 그런 바카라을 만나요. 이번 주는 양다솔 작가의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를 소개할게요.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요가를 해요. 끝나면 구내식당에서 미리 가져다 놓은 헬시팩을 들고 라운지 창가로 가요. 물 한 잔 시원하게 마시고, 물병에 폰을 기대요. 그리고 밀리의 서재를 켜는 거예요. 바카라을 읽으며, 귀한 문장을 하이라이트 치고 반복해 읽어요. 어쩌면 하루 중 가장 완벽한 시간이에요.
어딘가에서 내 글을 사부작거리며 쓰고,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를 읽으며 마음속 밑줄을 진하게 그을 사람들을 떠올려봐요. 이번 글은 그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네요.
전시는 앞서 소개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를, 영화는 <오디세이>를 강하게 추천드려요.
각자의 삶의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무지 어디에 맞출지 모르겠다, 또 동시에 이런 다양한 모습이 있어, 삶의 가능성이 있어 신난다는 두 가지 감각 속에 있어요. 일단 오늘 하루 작은 좋은 마음들을 알아차리며 보내시길 바라요.
철망산에서 본 아파트들!
철망산 도토리 사냥~
첫 꽃꽂이 작품 기록해 둬요.
포코피아 선물 받았어요!
제 스토리인데 귀여워서 박제,, 두고두고 볼래요 히히..
다음 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