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어린이집을 운영했을 때 1년 정도 주방에서 음식을 했다. 보육도우미 제도가 있기 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보육도우미를 지원받아 주방에서 아이들 급간식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것을 도와주는 도움을 받았다. 처음 주방에서 음식을 하게 된 건 고용한 조리사가 집에서 휴지통에 버려진 캔 뚜껑이 있는지 모른 채 손으로 꾹꾹 누르다가 크게 다쳐서 입원을 해서였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누군가는 아이들 간식과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했는데 한 달 정도 하니 재미있어서 그 이후 조리사를 고용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뭘 하든 즐겁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도전 정신이 있다. 게다가 꾸준하다. 그러는 바람에 1년을 주방에서 음식을 했다.
주방에서 음식 할 때 느낀 시간!
10시에 각 교실에 오전 간식을 배식해 주어야 했다. 배식은 선생님들이 하지만 배식할 수 있도록 각 반별 오전 간식 세팅은 내가 해야 했다. 큰 스텐 쟁반에 아이들 숫자만큼 간식 접시와 그날의 음식에 따라 포크나 숟가락을 챙겨 스텐 바트에 넣는다. 음식을 배식할 때 필요한 집게도 챙긴다. 컵이 필요하면 컵도 챙겨야 한다. 간식은 조금 큰 스텐 바트에 아이들 숫자만큼 적정량 담는다. 각 반별로 필요하니 이 작업을 세 번 반복해야 했다. 절대로 일찍 출근하지 않고 30분 전에 출근해서 30분 동안 이 작업을 했다. 원장인데 주방 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즐겁게 느껴지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주방 일 때문에 일찍 출근하지는 않으리라!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만 주방에 있으리라!
음식이 준비되어야 하는 정해진 시간이 있는 요리사는 철두철미한 계획 안에서 조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간식을 내보낸 후에는 바로 점심 식사 준비를 했다. 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하는 전처리 과정을 하고 있노라면 각 반에서 간식 쟁반이 나온다. 설거지 타임이다. 빠르게 설거지를 해서 싱크대와 조리대, 식탁을 비워 놓아야 원활하게 점심 식단 준비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어지르며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 치우며 하는 스타일이다. 설거지를 빠르게 마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식단은 대략 이렇다. 밥을 해야 한다. 국을 끓여야 한다. 그날의 단백질 음식은 볶음이나 구이, 찜 등이다. 나물 종류 하나는 꼭 있다. 김치는 미리 담가 놓은 것이 있으니 꺼내 놓기만 하면 된다.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나물이다. 다듬어야 하고, 씻고, 데치고, 무치고! 나오는 결과물은 처음 양의 반의 반의 반으로 줄어드는데 전처리 과정 하다가 지친다. 손에 흙 묻는 거 싫은데 꾹 참고 다듬어야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제일 싫다. 주방에서 음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 놓은 것이 있었다. 어떤 요리이든 알록달록 예뻐야 하니 색색 파프리카를 미리 아주 잘게 썰어 놓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양파와 당근, 파 이런 재료들을 미리 오늘 음식에 넣을 양만큼 채 썰어 놓거나 용도에 맞게 썰어 놓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필요할 때마다 씻고 써는 것이 아니니 시간이 단축되었다. 또 하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국은 육수를 끓여 사용했다. 육수를 조금 덜어 놓아 물이 필요하거나 조미료가 들어가야 하는 순간에 넣었다. 예를 들면 계란찜에 물 대신 육수! 남겨 놓은 육수는 제법 잘 사용되었다. 내가 만든 이유식을 너무나 잘 먹었던 영아들! 이유식에도 육수를 넣어서 끓여주어서 맛있었을 거다.
육수를 끓일 때에는 정말 많은 것이 들어갔다. 우선 달콤했으면 해서 양배추는 반통 무조건 넣었다. 감자, 양파, 무, 다시마... 아마도 양배추가 들어가 육수가 맛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양배추를 넣기 시작했을 때 항상 음식 재료로 필요해서 주문한 양배추가 남아 냉장고에 있는 것이 싫었다. 그날 들어온 재료는 그날 모두 소진하자는 것이 내 운영 철칙인데 양배추는 늘 남았다. 그즈음 남편이 양배추 김치를 해 주었는데 달고 맛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양배추는 익으면 더 달고 맛있다. 육수에 넣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양배추를 육수에 넣게 되었다. 일석이조였다. 아이들은 전보다 더 맛있게 먹었고, 냉장고에 양배추가 남아 걱정할 일이 사라졌다.
푹 익어야 더 맛있는 것이 식단에 나올 때면 미리 한번 따로 끓여서 익혔다. 어느 정도 익으면 본 요리에 넣어 간이 배게 푹 익혔다. 마치 튀김을 두 번 튀기는 것처럼! 이렇게 하면 시간이 단축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먹을 때 입에만 넣어도 살살 녹듯이 사라지는 고기를 맛볼 수 있다. 자주 나오는 간식 식단 중에 잼 샌드위치가 있다. 잼을 듬뿍듬뿍 올려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잼은 항상 남는다. 잼은 남아도 냉장고에 있어도 되는 재료이지만 어차피 다음에 잼 샌드위치가 나오면 또 한 병을 주문해야 했다. 그러면 남은 잼은 어떻게 하지? 물론 다음 식단 때 또 쓰면 되지만 나는 다르게 사용했다. 아이들은 음식이 빨가면 무조건 맵다고 생각하고 일단 고개를 젓는다. 빨간데 달고 맛있어야 하는 음식에 넣었다. 예를 들면 강정 소스! 닭강정 소스를 만들 때 고추장은 정말 소량 넣고, 케첩과 딸기잼을 넣으면 알갱이도 씹히고 달고 맛있다. 땅콩, 아몬드 같은 견과류는 비닐팩에 넣고 신나게 두드려주면 된다.
모방을 싫어하고, 똑같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 상 보고 하거나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데 그냥 했는데 나중에 보면 원래 그런 방법이 있다고 했다. 또는 누가 그걸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예를 들면 백종원 셰프!
김치볶음밥을 할 때 김치를 볶다가 김치 국물이 다 날아가 버려서 물이 필요한데 물을 넣으면 싱거워지고 맛이 없어지니 어차피 이따 넣을 거 지금 넣으면 어떨까? 하며 간장을 먼저 넣어서 김치를 간이 되게 볶았다. 그 후에 밥을 넣으면 간이 딱 맞아서 맛있는 김치볶음밥이 된다. 이거 분명히 내가 먼저 했는데, 나 혼자 마음대로 한 건데 백종원 셰프가 방송에서 꿀팁이라며 알려주는 것을 보았다. 나 요리 천재인가?
달인은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나는 달인은 아니지만 어린이집 주방에 있었던 그 1년 급간식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내 나름대로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을 찾다 보니 음식 맛이 좋아지는 쾌거도 얻었다. 정확히 11시 30분까지 모든 음식을 마치기 위해 퀸 사이즈 침대 두 개 넣을 만한 공간에서 시간과 싸우며 요리 재료들과 타협하며 달인이 되어갔다. 그때 내가 느낀 시간은 10분이면 음식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주방에서 혼자 말했다.
"여기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10분인데 이 10분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구나!"
이번에 어르신 스마트 인지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또 한 번의 시간의 마술을 느꼈다. 다른 곳에서는 뭐 했는지 모르게 지나가는 한 시간인데 여기에서 한 시간은 노래를 여러 번 부르고, 율동을 하고, 공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했는데도 아직 20분이 남았네! 했다. 너무 신기해서 10년 전 어린이집 주방에서 나에게 마술을 보여준 시간이 다시 나를 찾아왔나? 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은 때때로 마술을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