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가 놓치고 있는 것

옳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by포트너스

찬성률 93.1%.

4월 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다.

5월 13일 새벽, 2차 사후조정이 결렬됐다.

5월 21일로 예정된 총파업은 회사의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되며 무산 직전이고,

5월 17일에는 국무총리가 직접 긴급조정권을 꺼내 들었다.


숫자만 보면 노조는 강하다.

내부 결속은 거의 만장일치고, 정부가 직접 진압 카드를 만지작거릴 만큼 사측이 다급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강한 노조가 바깥에서 거의 지지를 못 얻고 있다.

왜일까.

답은 단순하다. 타이밍을 잘못 골랐다.


지금이 어떤 시점인가

2026년 1분기, 삼성전자는 한국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0조와 영업이익 50조를 동시에 넘었다. 영업이익 57조 2,300억 원. 전년 동기 대비 756% 증가.

주가는 올해만 111% 올랐고, SK하이닉스는 144% 올랐다.

4월에 12년 7개월 만의 최저치를 찍었던 외국인 지분율은 5월 들어 다시 매수로 돌아섰다.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조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 삼성전자는 한국 코스피의 심장이다. 그 심장이 뛰는 박자에 맞춰 수백만 명의 국민연금 수익률이 움직이고, 개인 투자자들의 노후 자금이 흔들리고, 외국인 자본 유입 여부가 결정된다.

다시 말해, 지금 시점에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멈추겠다고 하는 것은

경영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산을 인질로 잡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노조의 의도가 아니라는 건 안다. 노조의 요구는 정당하다. 영업이익 57조를 낸 회사가 성과급 산정 기준을 '영업이익의 20%'로 명문화하자는 요구는 합리적이다.

사측이 고집하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은 같은 100억 영업이익이어도 성과급을 훨씬 적게 나오게 하는 장치다. 노조 입장에서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옳은 것과 지지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노조가 놓치고 있는 전략적 진실

전략의 본질은 자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신시아 몽고메리가 『당신은 전략가입니까』에서 반복해 묻는 질문이 있다.

"당신의 가치는 누가 인정하는가."

지금 삼성전자 노조의 가치는 조합원 내부에서만 인정받고 있다.

93.1%라는 숫자가 그걸 증명한다.

그런데 노조 바깥의 세상은 다르게 본다.

주식 투자자에게 노조는 수익을 깎는 변수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노조는 내 노후를 흔드는 존재고, 청년 구직자에게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 1억 5천만 원짜리 성과급 투쟁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이 인식의 격차를 노조는 프레임으로 깨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메시지는 여전히 "사측이 부당하다"에 머물러 있다. 사측이 부당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노조에게 필요한 건 외부 청중에게 자기 정당성을 설득하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우리는 회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사의 미래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영업이익 57조를 낸 회사가 직원에게 6조를 나누고 주주에게 11조를 배당했습니다. 2026년 예상 배당은 60조입니다. 우리는 더 달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룰을 명문화하자는 것뿐입니다. 룰 없이 굴러가는 회사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회사입니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면 삼성전자는 더 투명한 회사가 되고, 주가는 더 안정됩니다. 우리는 주주의 적이 아닙니다."

이 프레임이었다면 외국인 투자자도, 국민연금 가입자도, 일반 시민도 최소한 듣기는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총파업 vs 긴급조정권"의 강대강 구도가 아니라,

"거버넌스 개혁 요구"라는 더 큰 그림으로 갈 수 있었다.


정당성과 전략은 다르다

노조의 요구는 옳다. 하지만 옳음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옳음을 외부 청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전략이다.

지금 노조는 이 번역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93.1%의 내부 동의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고립됐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노조는 진다.

발동되지 않더라도, 이번 협상이 끝난 뒤 노조의 바깥에서의 정당성은 더 약해질 것이다.

다음 협상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다음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조는 경영진을 공격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자기를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강한 노조의 마지막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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