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을 훤하게 하다
사람의 눈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나, 주인의 손길이 뜸해진 공간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오늘 나의 하루가 그러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려, 나는 오랜 인연을 이어온 옛 온라인 게임 발령 동기와 함께 자주 들르곤 하는 동네 꽃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은은한 꽃향기로 어우러진 그곳은 언제나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는 장소다ㆍ 임용동기와 함께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고소하게 비워내고, 끊이지 않는 옛이야기에 취해 인생후반기를 어떻게 살아갈지를 토의했다ㆍ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 가슴 한구석에 쌓여 있던 묵직한 마음의 무게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구석진 진열대 아래, 사람들의 시선이 덜 미치는
장소에 화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다가가 보니, 꽃잎 끝이 조금 시들었거나 봉오리가 조금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어진 서양란 10여 개가 버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한 포장지에 싸여 누군가의 기쁜 날을 축하해 주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주인의 손끝에서 '버려질 물건'으로 분류되어 버린 녀석들. 이상하게도 그 쓸쓸한 모습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한때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자태를 뽐냈을 텐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중에서 아직 줄기가 푸르고 생기의 끈을 놓지 않은 녀석 몇 개를 유심히 골라냈다. 꽃집 주인에게
내가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쾌히 승낙했다
그 서양란들을 노란 비닐봉지에 조심스레 담았다.
남들이 보기엔 '쓸모없는 쓰레기'를 챙겨가는 이상한 손님이었을지 모르지만, 내 손끝에 전해지는 서양란의 감촉은 아직도 차갑지 않고 따스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닐봉지 속에서 작게 들리는 듯한 생명의 숨소리가 내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베란다 구석에 엎어두었던 빈 화분을 꺼냈다.
흙을 털어내고, 물장난하듯 화분 바닥에 스치로풀을 깔아 배수가 잘 되도록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비닐봉지에서 꺼낸 서양란의 뿌리를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시든 잎은 잘라내고, 엉킨 뿌리를 살살 풀어 가며 영양분이 듬뿍 담긴 새 흙으로 고르게 채워 넣었다.
손에 검은흙을 묻혀가며 서양란을 심는 동안, 묘한 정적과 평온함이 거실을 채웠다.
마지막으로 분무기로 잎사귀 하나하나에 정성스레 물을 뿌려주니, 조금 시들어 가던 서양란이 마치 긴 목마름을 해소하듯 촉촉하게 윤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뿌리를 든든하게 내린 화분을 거실 가장자리 햇살이 잘 드는 수장대 위에 가만히 진열해 두었다.
단지 흙을 바꾸고 장소를 옮겨주었을 뿐인데, 거실 전체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환해졌다. 칙칙했던 공간에 생기 있는 초록빛과 희미하지만 고고한 난의 향기가 퍼져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는 물론이고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우울함마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득템'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 가슴속에서 퐁퐁 샘솟았다.
문득 생각에 잠기게 된다. 우리는 우울하거나 마음이 적적할 때, 왜 그리도 꽃을 찾게 되는 걸까.
화려하게 활짝 핀 꽃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친 사람에게 최고의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리라.
내 다친 마음을 알아달라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피어나 세상을 밝히는 꽃의 담담함. 그것이 바로 우리가 꽃을 통해 얻는 치유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보통 꽃병에 꽂아두는 꺾은 꽃은 아무리 정성을 다해 물을 갈아주어도 일주일이면 시들어버리기 일쑤다.
시들어가는 꽃잎을 바라보는 일은 때로 화려함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화분에 제 뿌리를 내리고 심긴 서양란은 다르다.
상품 가치가 떨어져 주인에게 외면받았던 녀석일지라도, 서양란 특유의 강인하고 긴 수명 덕분에 한번 뿌리를 내리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꽃을 피워낸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일 아침 거실로 나와 이 아이들과 눈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사치이자 축복이다.
시인 나태주는 그의 시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고 노래했다. 오늘 내 거실에 자리 잡은 서양란이 딱 그러했다.
시장에서 팔리는 꽃들처럼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완벽한 대칭이나 화려한 색감은 없을지 모른다. 어떤 잎은 살짝 찢겨 있고, 어떤 꽃봉오리는 중간에 성장을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 비대칭의 곡선 속에서 나름의 경이로운 생명력이 느껴진다.
상처 입은 흔적조차도 그 서양란이 견뎌낸 시간처럼 더욱 정이 가고 애틋해진다.
세상 어디를 보나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단지 우리가 자세히, 그리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았을 뿐이다.
버려질 위기에서 우리 집 거실로 찾아온 작은 서양란.
오늘 나는 단순히 꽃 한 뿌리를 얻어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 달 동안 거실을 환하게 밝혀줄 빛과 마음의 평온을 함께 얻어왔다.
오늘 밤, 거실 불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서양란을 올려다본다.
은은한 달빛 아래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꽃을 보며 속삭여본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앞으로 한 달 동안,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 내 마음은 비로소 서양란의 향기처럼 그윽하고 한결같이 온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