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휴대폰으로 배달된 좋은 글귀들이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내 마음에 작은 위로의 빛을 비추어 준다
지나온 날들을 돼돌아보면 참으로 모질고 고된 시간들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4남 3녀,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내 어깨 위에는 늘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다.
말도 잘 듣고 성실한 남동생 2명은 교통사고와 우울증으로 20대 후반에 미혼으로 생을 마감했다.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났고, 서로 의지하며 우애 있게 살았던 누나마저 5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렇게 형제 중 가장 살갑고 친근하게 지내던 3 남매를 그리 허망하게 보내고, 어머니마저 오토바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버리셨을 때, 우리 집안의 불행은 극에 달했다.
그 후 집안은 고집 세고 불통인 아버지의 독단적인 세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장남인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둘을 낳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무시하고 차별하며 천대하셨다.
힘들게 일하면서 고학을 하며 공부를 한 후 안정된 온라인 게임에 취업하여 20대 후반에 결혼하여 단칸방에서 두 딸을 키우느라 그 고생을 하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들을 낳고 이혼한 차남 부부에게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집안의 문전옥답을 모든 자식들 모르게
다 팔아서 넘겨주며 집안을 온통 풍비박실 내버리셨다.
그것도 모자라 조상님들이 잠들어 계신 2만 평 넘는 선산과 임야까지 겨우 네 살 난 손주에게 아무도 모르게 증여하셨지만 결국에는 친권자인 이혼한 남동생의 부인이 전부다 선산과 다섯 분의 조상산소까지
이름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 버렸다
미성년자인 네 살배기 손주의 친권자가 이혼한 남동생이 아니고 그의 아내이다 보니, 결국 조상 산소가 묻힌 모든 임야마저 모두 남의 손에 팔려 나가고 말았다
그러한 나는 장남이라는 바카라임감으로 조상의 선산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부부는 아버지를 찾아가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라고 만류했을 때, 아버지는 장남인 우리 부부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금방이라도 때려죽일 듯이 낫으로 목을 쳐 버리겠다 는 등 폭언을 퍼부으셨다.
"너는 대를 이을 아들도 없으니 칠거지악이다.
내 재산 내 마음대로 하는데, 아들도 못 낳은 병신 새끼가 어디서 참견이냐"라며 내 얼굴을 칠 듯이 위협하셨던 그 서슬 퍼런 모습은 가슴에 씻을 수 없는 피멍으로 남았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아들 낳았다고 모든 재산을 받은 남동생과 광주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랑 네 명이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러 가서 장남인 나는 준비해 온 소주 한잔을 할아버지 상석에 올리려고 했더니,
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나를 밀어 버리면서 " 저리 가라" 해놓고 아들을 낳은 남동생을 불러 술잔을
올리게 한 후 나에게는 벌초하고 나서 깎인 풀들을 갈퀴로 긁어 모아라고 시켰다.
화도 나고, 서운 해서 아버지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고집이 센 아버지에게 맞대꾸를 할 수 없어
그냥 참으면서 혼자 화를 삭였다.
정말 서운 하고 화가 났다.
어머님만 살아 계셨으면 이런 불행한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인데 인자하고 자상하신 어머님의 자리가
너무 크다
아버지로 인하여 결국 수백 년 이어온 가문의 유산은 아버지의 지독한 고집과 독선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전 재산을 받아 챙긴 이혼한 작은 며느리만 좋은 일을 시켜준 꼴이 되었다.
그토록 몰상식한 행동을 하신 아버지는 6·25 전쟁 국가유공자이시다. 매월 보훈급여금이 지급되고 있음에도 늘 돈이 없다고 하셨다. 지난 2020년에는 내가 직접 국민면금공단과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온갖 힘든 서류 절차를 도맡아 처리해 드린 덕분에, 2년 이후인 2022년부터 매월 34만 원씩 기초연금도 아버지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가고 있다.
어머니가 종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무보험 오토바이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님의 장기 병원비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끝에 목포의 손해사정인을 우연히 만났다
오토바이 사고를 낸 가해자는 시골에서 혼자 사는 76세의 촌노이었지만 돈이 없다고 감옥 갈 테니 배 째라는 식이었다
가해자가 무보험차이고, 재산도 없다고 하니 보험도 받을 수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서울에서 고향 장흥으로 내려가 손해 사정인을 만났다
오토바이사고로 사망한 어머님의 위로금 1,550만원 중 손해사정인 수수료 300만 원을 제외하한 나머지
1250만 원을 어머니의 배우자인 아버지 통장으로 입금시켜 드렸고, 수도공사 관련 땅 보상금 2,500만 원과 우리 임야 쪽으로 길이 생겨 지급된 보상금 500만 원은 모두 아버지 몫이 되었다.
지금도 아버지 통장에는 국가유공자 수당, 기초연금, 참전수당 등 삼백만 원에 가까운 돈이 매달 지급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시는지 나에게는 가르쳐주지도 않으신 채 늘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신다.
장남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변화시켜 보려고 서울 내 집으로 제사까지 모셔 와 10년 동안 정성껏 모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재산을 이혼한 며느리에게 다 주고 싶으셨던지, 이혼 전에 내게서 제사마저 다시 빼앗아 버리셨다.
죽도록 집안일과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큰아들이 있는 반면, 가만히 앉아서 통장에서 돈이나 빼먹고 재산만 물려받는 자식이 따로 있는 것을 보면, '부모 재산은 먼저 빼앗아 쓰는 자식이 임자구나' 하는 깊은 환멸을 느낀다.
오늘도 여전히 돈이 없다고 타령하시는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고 기분이 몹시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고자, 지인이 보내준 노자(老子)의 말씀을 가만히 읊조려 본다.
노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버려야 할 네 가지를 말했다.
내가 최고라는 교만함을 버리는 교기(驕氣)
마음에 넘치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는 다욕(多慾)
잘난 척하고 과시하려는 표정을 버리는 태색(態色)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려는 고집을 버리는 음지(淫志)
가만히 보니 아버지는 평생 이 네 가지를 버리지 못해 자식 가슴에 못을 박고 집안의 재산을 허공에 날리셨다.
풀잎 위에 잠시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우리의 인생도 잠깐 왔다 사러 지는 순간이거늘,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아까워 그토록 움켜쥐고 장남을 멸시하셨을까.
인생은 풀잎의 이슬과 같다.
그 짧은 생을 살면서 내가 무엇에 마음을 담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한다.
친구가 오늘 아침 보내온 글귀는 내게 나침반처럼 말해준다.
원망하지 말 것, 자바카라하지 말 것, 현실을 부정하지 말 것. 그리고 자신을 바로 알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낼 것.
부처님께서는 "상대가 화를 낸다고 나도 화를 내면 두 번 패배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부당한 처사와 차별에 얽매여 살아왔던 나의 지나간 세월들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분노로 채운다면, 그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지는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말해준다고 한다.
탐욕과 고집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얼굴 대신, 비록 가진 것은 적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 비가 내린다
그러나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바람이 분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바람도 없다.
꽃들이 피어 있지만,
지지 않는 꽃 또한 없다.
그렇고 보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는가 본다.
기쁨도, 슬픔도, 억울함과 분노도 결국은 흘러가 사라질 것이다.
이제, 내 나이 70대가 되니 위험하다는 췌장과 신장에 문제가 생겨 정기적으로 6개월마다 대학병원에 와서
내시경과 mri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툭탁거리는 밀폐된 검사 장비 속으로 들어가 40여분 동안 검사를 받는 것도 이제는 반복되다 보니 지겹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살얼음 같은지도 모른다.
이해하려고 해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밉지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