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쫄보원더우먼의 짬노트
휴일 아침이었다.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라는 걸 몸이 먼저 잊는다. 눈을 뜨자마자 혈압을 재고, 약 한 알을 삼킨다. 이제는 하루의 첫 단추가 된 일. 숫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이 시작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어제 씻어 말려 둔 그릇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다 떨어진 우엉차를 한 주전자 올려놓고, 마른 옷을 개는 사이 쌓여 있던 빨래는 세탁기 속으로. 손은 바쁜데 이상하게 마음은 차분하다. 이런 일들에는 생각이 필요 없어서, 오히려 생각할 틈이 생긴다.
간병인님께 전화를 걸었다. 간밤의 어머니 상황과 의사 선생님 말씀을 확인한다. 입원하신 뒤로 입맛을 잃으신 어머니. 평소 좋아하시던 가지나물과 반찬 몇 가지를 통에 담았다. 병원 밥상 앞에서 조금이라도 수저를 드셨으면, 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서.
다 된 세탁물은 남편에게 건조대를 부탁하고, 아이들을 깨워 간단히 아침을 먹였다. 작은아이는 공부하러 보내고, 큰아이와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휠체어를 타고 간병인님과 함께 내려오신 어머니께, 큰아이가 수술 뒤 경과를 차근차근 말씀드렸다. 가만히 들으시던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나 때문에 너희들이 오가느라 고생이 많다."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던 분이었다. 늘 괜찮다고만, 늘 너희 걱정이나 하라고만 하시던 분. 그 한마디가
병원을 나서는 내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오후는 오후대로 흘러갔다. 여름옷이 없다는 큰아이와 세일 중인 옷가게에 들러 쇼핑을 하고, 늦은 점심은 간단히 햄버거.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사고 후유증 물리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들렀다. 텅텅 비어 있는 냉장고를 채울 주말 식재료는 재래시장에서 골라 배달로 부치고, 똑 떨어진 마늘 큐브를 만들려고 마늘을 손질해 갈아 냉동실에 넣었다.
저녁은 저장해 두었던 레시피대로, 압력솥에 찹쌀 누룽지 백숙.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하루의 피로가 조금 녹는 것 같았다. 대파를 다듬어 일부는 냉동실로, 일부는 냉장고로 나눠 넣고, 설거지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여행 유튜버의 아기 나오는 영상을 한 편 보고, 아파트 주위를 삼십 분쯤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밤 열한 시 반.
돌아보면 매일 반복되는 이 '귀찮은 행동'들은 다 엄마의 몫이구나 싶다. 혈압을 재는 일도, 화분에 물을 주는 일도, 마늘을 가는 일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매일 돌아오는 일들.
그런데 이상하지. 어머니의 그 한마디를 듣고 온 날이어서일까. 이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오늘은 유난히 또렷하게 알겠다.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지켜야 할 것들이 곁에 있다는 뜻이니까.
오늘도 소소하게 잘 보냈구나.
그렇게, 휴일인 줄 몰랐던 휴일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