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언어들』을 읽고, 말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
작사가로서의 김이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노래 가사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데 바카라으로 만나니 어떻게 그런 대중성이 있으면서 공감이 뛰어난 가사를 쓰게 됐는지 더 잘 알게 됐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이해한다는 말, 지친다는 말, 부끄럽다는 말.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말들 속에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않았던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보통의 언어들》은 내게 일기장 같았다. 평범하게 사용하는 말을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바카라이었다.
바카라을 읽다가 사랑과 좋아함에 대한 이야기에 오래 머물렀다.
사랑은 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하고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조금 다르다고 했다.
해가 좋은 날 널어놓은 빨래처럼 뽀송뽀송하고 유쾌한 기분을 주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과 좋아함을 이렇게 나누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 곁에서 긴장을 풀 수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오래 곁에 있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너무 쉽게 안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가까운 사람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나는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정말 잘 보고 있었을까. 이 질문 하나가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특히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부분이 그랬다. 사과하는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면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과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빨리 식지 않는다. 끓고 있던 냄비의 불을 껐다고 해서 냄비가 바로 식는 것은 아니니까. 사과를 받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나는 그동안 사과하는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됐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바카라을 읽으며 사과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오래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특히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미안했던 일도 떠올랐다. 미안하다는 말은 털어내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 심어두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걔는 이해가 안 가.’ 우리가 참 쉽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의아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걔는 잘못됐어’라는 비난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도 이 말을 사용할 때가 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이 들 때, 더 이상 그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을 때 너무 쉽게 입에서 그 말이 나와버렸다. 이제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면 한 번쯤 멈춰보려고 한다.
이것이 물음표, 즉 의아함인지 아니면 비난의 느낌표인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 내 관점을 의심해 보면 다른 관점이 보인다. 그때 비로소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말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늘 쓰던 말은 너무 익숙해서 이상한 줄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말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좁은 경험을 세상의 기준처럼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그러다 ‘감정’에 대한 이야기에 마음이 머물렀다. 사람마다 감정 서랍이 있다는 말.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져도 그때 느꼈던 감정은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
감정의 서랍은 냉장고와 달라서 열고 닫을수록 풍성해진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정신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눈물이 나는 것도, 지치는 것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는 것도 어쩌면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일 테니까.
바카라에서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한참 멈췄다. 나이가 들어도 개인으로서의 매력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요즘 나는 ‘뻔뻔하게 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었다.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드는 마음이다. 잘못했을 때 얼굴이 붉어지고,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고, 내 행동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은 불편한 감정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쩌면 부끄러움은 아직 마음에 굳은살이 다 박이지 않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바카라을 덮고 나니 내가 평소 어떤 말을 하고 사는지 돌아보게 됐다. 말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니까. 좋은 말을 골라하는 것보다 먼저 내 마음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안의 감정 서랍도 가끔 열어봐야겠다. 크기도 깊이도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감정 서랍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슬픈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잊고 싶다는 이유로 너무 깊숙이 넣어두면 나중에는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화’인 줄 알았던 감정이 ‘부끄러움’ 일 수도 있고, ‘슬픔’이 ‘서러움’의 다른 표정일 수도 있다. 기쁨이나 감사, 사랑 같은 감정도 너무 아껴두지는 말아야겠다. 오늘 내 감정 서랍을 열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천천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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