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에라도

by이디뜨

두 평 반 남짓 흑백의 단칸방. 네모난 방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주황색 빨랫줄에 하얀 기저귀가 가지런히 널려 있다. 빨래 삶는 냄새인지 쌀미음 냄새인지, 하얗거나 뽀얗거나 허연 색에서는 원래 구수한 냄새가 나는 걸까?

살짝 찌그러진 움푹한 얄루미늄 그릇에 담긴 쌀미음을 휘휘 저어 식히며 엄마가 다가온다. 엄마 얼굴은 보이지 않고,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은 다리만 성큼성큼 가까이 온다. 두툼한 요와 담요가 깔린 이부자리에 배냇머리가 나풀한 동생이 겨우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나? 앉아 있었다면 내가 동생 등을 받치고 있었고, 누워 있었다면 누운 동생 머리맡에 내가 앉아 있었겠지. 오랜 기억이란 이렇게 흐릿해서 꿈결인가 싶다.


동생은 엄마가 알맞게 식힌 쌀미음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아이고. 잘 먹네. 배고팠어?"

동생의 입과 미음 그릇을 부지런히 오가는 숟가락을 번갈아 지켜보던 나는, 내가 동생한테 미음을 떠먹여 주겠다고 떼를 쓰다가 결국 미음 그릇과 숟가락을 받아 쥐었다. 한 숟가락을 떠서 동생 입에 떠 넣어 주고, 동생 입가에 묻은 미음을 엄마가 했던 것처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긁어 동생입에 야무지게 흘려 넣었다. 예의상 몇 번을 동생 입으로 나르던 숟가락은 어느새 내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밀가루 풀 같은 무맛의 쌀미음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싹싹 긁어 마지막 한입까지 내가 마무리한 뒤 엄마에게 그릇과 숟가락을 건네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두 번째 추억이다.


그보다 이전의 첫 기억은 엄마와 배를 맞대고 누운 낮잠 시간이다. 엄마의 가슴께에 내 얼굴을 파묻고, 짧고 통통한 다리를 내쪽으로 누운 엄마 골반에 척 얹었다. 올려다본 엄마의 얼굴엔 동그란 콧구멍 두 개와 입꼬리가 올라간 입, 긴 속눈썹이 가지런한 쌍꺼풀진 눈, 말하자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꽉 들어차 있었다. 손은 엄마의 가슴을 꼬집었다가 검지를 세워 엄마의 까만 콧구멍에, 하얀 잇속에 번갈아가며 넣으며 까르르까르르.

"자장자장. 코코 낸내. 코 자자."

내 등을 토닥토닥하는 엄마의 손바닥은 아랫목에 넣어둔 스텐 밥공기보다는 미지근했고, 내 손으로 움켜쥐었다 폈다 한 엄마의 가슴보다는 따뜻했다. 엄마의 손 온기는 엄마 손바닥만 한 내 등짝에서 기저귀가 불룩한 엉덩이로 옮겨갔다가, 까르르 소리가 잦아들고 쌕쌕이는 내 볼때기로, 동그란 뒤통수로 옮겨갔다.


내 뒤통수를 어루만져주던 그 손길, 내 등을 토닥여 주던 그 온기는 내 딸, 그러니까 엄마의 첫 손녀에게로 갔다. 할머니가 된 엄마는 핑크색 하트모양 쿠션에 다리를 착 올리고 이제 막 잠이 든 손녀를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 잠순이. 너 어릴 때 엄마랑 누워서 낮잠 자는 걸 얼마나 좋아하던지. 한쪽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가 이불에 탁 누우면 눈을 반짝하면서 달려와 옆에 눕곤 했지.”

첫 손녀가 마냥 신기하던 엄마는 딸이 손녀만 하던 그 시절을, 어쩌면 당신이 스물몇 살 팔팔한 새댁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젊은 엄마와 어린 나인지, 할머니와 손녀인지 헷갈리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적이 있다.

“나... 그때 기억이 나는 것 같아.”


까무룩 잠이 든 내가 꿈속에서 본 것 같은 젊은 엄마의 모습,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동생의 쌀미음을 뺏어먹기 전의 나, 온전히 엄마가 내 차지였던 것 같은 그 순간이 문득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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