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후 한 달, 지나간 1년을 다시 생각하다
발리에 온 지 딱 1년째 되는 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했다. Year 5로 입학하게 되었고 아이는 입학 후 또래들의 차가운 행동에 꽤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아이가 다가가서 말을 걸면 무시하거나 안 들리는 척 가버리고, 두 번이나 물어봤는데도 대답하지 않는 행동들, 이미 형성된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고 둘이 단짝인 아이들 사이에 들어가서 말을 걸려고 하면 “내 친구야” 하며 데리고 가버리기도 했다. 한 번은 강당에서 자리에 앉았는데 한 친구가 “너 뒤로 가줄래? 난 다른 애랑 앉고 싶으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예진이는 “알겠어.” 하고 뒤로 갔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그 친구에게 너무 속상해서 화장실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고 했다. 마침 사춘기도 시작되는 시점이라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평소에는 꽤 단단한 아이였는데 많이 약해진 모습이었다. 심지어 얼굴이 아시안이니 영어를 아예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걸어보지도 않았으니 영어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예진이 앞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지금 이 아이들이 내 이야기 하는 거야?’ 싶어 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 2주 동안은 거의 유령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한국인도 전혀 없는 학교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아이는 매일 학교 가기 싫다며 울었다. 간식 시간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간식을 먹다가 화장실에 가서 토한 적도 있었다. 아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나도 눈물이 났지만, 초등 고학년인 아이를 두고 학교에 “친구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나이였다. 이제는 아이들도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나이고 친구는 결국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분이라 그냥 시간이 흐르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기도를 잘 안 하는데… 사람이 급하니까 하느님을 찾았다. “예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세요.” 하고 친구 문제로 기도를 했다. 사람이 급하니 날라리 가톨릭 신자가 하느님도 찾게 되네 싶어서 웃프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뿐이라는 게 슬펐다.
예진이에게는 딱 3주만 참아보자고 했다. “아이들도 너에게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갑자기 나타나서 ‘너 나랑 친구하자’ 하면 걔네들도 황당할 수 있잖아. 그냥 조용히 스며들듯이 해봐. 무시해도 매일 인사하고, 같이 놀고 싶으면 한 번씩 끼어들어서 같이 놀자고 한마디 해보고.” 그리고 칭찬 기술도 하나 가르쳐줬다. 매일 친구 한 명에게 칭찬을 하나씩 해보라고 했다. “오늘 너 헤어핀 예쁘다. 어디서 샀어?” 이런 식으로. 그렇지만 칭찬을 너무 많이 하면 일부러 그러는 티가 날 수 있으니 무조건 하루에 하나만 하라고 했다. 이 방법이 먹힌 건지 아니면 정말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학 온 지 3주째 되던 날부터는 여기 오래 다니던 아이처럼 친구들에게 문자와 전화도 오고 플레이데이트를 하자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에 도움이 된 게 또 하나 있었다. 이 학교는 축구에 진심인 학교였는데 예진이는 초등학교 1~2학년 때 축구학원을 한국에서 다녀서 축구를 제법 할 줄 알았다. 그때 예진이가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보내줬는데 여자아이가 축구학원에서 예진이 한 명뿐이라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은 하기 싫어서 그냥 보냈던 게 지금 학교에 와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학교는 체육시간뿐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여자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는 거다. 예진이도 자연스럽게 같이 축구를 하면서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골을 넣고 점수를 내고 축구를 잘하니깐 서로 같은팀 하고 싶다고 예진이를 데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처음 아이들이 왜 그렇게 차가웠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예진이가 발리에서 이미 1년을 살았다는 것도 몰랐고 한국에서 바로 온 영어를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수업시간에 조금씩 대화를 하면서 ‘어? 얘 영어 하네?’ 하고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발리는 아무래도 단기로 다니다가 떠나는 학생들이 많다. 저번 학기에도 한 학기만 다니고 돌아간 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도 새로 온 아이에게 처음부터 정을 주기가 싫었던 것 같다. 예진이에게도 “너 얼마 동안 여기 있다가 갈 거야?”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예진이가 “2년은 더 있어.”라고 하니 친구들이 굉장히 행복해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친해지면 또 헤어져야 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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