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국제학교 적응기
이제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게 정말 맞는 것 같다.
아직도 현실감은 없다. 남편은 곧 비자가 나오니 이제 들어올 준비를 하라고 한다. 챙길 짐은 많지 않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예진이 학교였다.
학업 면제 신청서를 내야 했다.
다행히 예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가게 되었고, 여름방학 기간에 출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께 방학 전에 서류를 미리 제출하겠다고 하이톡(선생님과 연락할 수 있는 앱)에 남겼다.
다음 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와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 아쉽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정말 가는구나 싶었다.
해외 출국으로 초등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생각보다 많았다.
의무교육 면제 신청서, 해외 파견 관련 회사 공문과 재직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출입국 사실증명, 외국학교 입학 허가서까지.
부모의 해외 발령으로 가족이 함께 나가는 경우는 ‘인정 유학’으로 처리되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별도의 시험 없이 원래 학년으로 복귀할 수 있다.
요즘은 조기유학으로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경우는 ‘미인정 유학’이 되어 돌아왔을 때 간단한 입학시험을 본다고 한다. 어렵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괜히 마음이 쓰인다.
솔직히 말하면 국제학교 입학시험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저학년이라면 조금 덜 부담스럽겠지만, 고학년일수록 학년 배정이 중요하다. 영어 점수가 부족하면 한 학년 아래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진이도 입학시험에서 영어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수학과 과학 점수가 높아서 다행히 4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출국을 앞두고 가장 많이 했던 질문도 결국 이것이었다.
“선생님, 예진이가 국제학교 가서 잘 적응할까요?”
담임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제가 본 예진이는 잘 적응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정말 궁금했던 질문.
“선생님, 학업적으로 중요한 시기인데 가는 게 맞을까요? 만약 선생님이라면 3년, 아이와 함께 가실 건가요?”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네, 저라면 무조건 갑니다. 중1 때 돌아오니 괜찮아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사실 지금이라도 선생님이 말려주시면 가지 말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누가 “굳이 왜 가세요”라고 말해주면 핑계 삼아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잡지 않는다.
오히려 다들 잘 다녀오라고 한다.
정말 떠나는구나.
출국이 며칠 남지 않았고, 남은 건 예방접종이었다.
예진이와 함께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필요한 약 처방을 받고 예방접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예방접종 리스트를 보시더니 장티푸스 말고는 대부분 접종이 되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진이는 장티푸스만 맞았다.
보건소와 일반 내과에도 여러 번 전화해봤지만 백신이 없다고 했는데, 소아청소년과에는 거의 모든 백신이 준비되어 있었다.
예방접종은 꼭 아이만 맞는 게 아니라 성인도 소아청소년과에서 함께 맞을 수 있다.
해외감염병 NOW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나라 이름을 검색해서 주의해야 할 감염병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감염병은 뎅기열, 폴리오, 홍역이었다.
예방접종 관련 정보는 정부24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사실 제일 빠른 건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내 기록을 보시더니 폴리오, 홍역, 장티푸스, A형 간염, 일본뇌염까지 바로 알려주셨다.
모르면 그냥 가서 물어보면 된다.
한 번에 다 맞지 않고 2주에 걸쳐 나눠서 맞기로 했다.
가기 전에 미리 예방접종까지 해두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그리고 남은 건 이사.
컨테이너 이사와 항공이사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짐이 많지 않아 우리는 항공이사를 선택했고, 박스로는 15박스 정도를 보냈다.
옷, 주방용품, 이불, 골프채, 아이가 읽을 바카라들.
양념류와 먹을 것도 챙기려고 했지만 항공 이슈로 가루나 액체류는 넣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스킨, 로션 같은 화장품도 다 넣지 못했다. 결국 한 박스 정도는 아예 못 보냈다.
한국 양념을 인도네시아에서 못 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비쌀 뿐이다.
한국에서는 요리도 잘 하지 않으면서 인도네시아에 가면 괜히 취미로 요리를 하게 될 것 같았다.
군고구마를 해 먹겠다고 에어프라이기도 야무지게 챙겨 보냈다.
인도네시아는 전자제품이 꽤 비싸다고 해서 밥솥, 토스트기, 커피머신, 에어프라이기, 믹서기까지 나의 주방 도우미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예진이도 이제는 많이 커서 옷만 챙기면 되니 그건 한결 편했다.
유행도 없는 나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입던 옷 가져가서 3년 입고 다 버리고 올 생각이었다.
아줌마가 되고 나니 예쁜 옷보다 불편하지 않은 옷에 더 손이 간다.
발리는 물도 좋지 않고 자외선도 강하다. 한국은 여름이 5~6개월이지만 발리는 여름이 1년이다. 땀 때문에 거의 매일 빨래를 해야 하니, 가져가서 다시 들고 올 옷은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옷을 덜 사고, 최대한 미니멀리스트처럼 살아보려고 한다.
물론 이 결심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후줄근한 한국 사람처럼 보일까 봐 또 쇼핑하러 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은 지금 가지고 있는 옷들이 충분히 예쁘니, 1년은 버텨보기로 했다.
해외 이사도 두 번째라 이번에는 생각보다 덜 스트레스였다.
집에 있는 것 중 정말 잘 쓰는 것만 골라서 보냈다.
어차피 발리도 사람 사는 곳이다. 필요한 건 다 있다.
오히려 발리에는 예쁜 그릇을 파는 가게들이 많아서 한국 신혼부부들도 그릇 쇼핑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나도 그래서 식기류는 거의 챙기지 않았다.
살면서 채우면 되니까.
그렇게 서류를 내고, 예방접종을 하고, 박스를 보내고 나니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아,
진짜 떠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