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의 소설가인 박완서 작가
박완서
바카라에 관심이 없어도 박완서 작가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에 태어나 2011년에 사망하셨지만 수많은 걸작을 남기셨다. 서울대를 다니던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학업을 중단했지만 마흔의 나이에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쓴 소설이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현대 소설과 견주어도 큰 차이는 없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고민들은 유사하니까. 여러 수작들 중에 소설가들이 뽑은 10개의 단편을 하나씩 읽어보고 기억에 남는 세 편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쥬디 할머니
가장 인상깊었던 <쥬디 할머니>는 반전의 묘미가 있어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단편을 읽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해 주었다. 친화력 좋은 동안 미인 할머니의 실상이 밝혀지자 할머니는 그토록 아끼던 손녀 쥬디의 액자를 발로 차며 전화통화를 한다.
'새로운 곳에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니 얼른 집을 알아봐 줘.'
할머니의 진심은 어디까지였을까. 주변에서 이런 거짓말쟁이를 만난다며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보았다.
성인이니 다들 잘 대처하겠지만 얕은 술수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낌새가 보인다면 협력해서 잘못을 일깨워주고 바른 방향으로 문제가 풀리도록 해야할 것이다.
애 보기가 쉽다고?
1980년대에 쓴 소설이라 물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소설을 읽다보면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지하철표를 사고 데리고 나온 9개월짜리 손주 기저귀 3개, 망가뜨린 단팥빵 3개의 값을 치르고 나니 수중에 돈이 없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인 할아버지의 구걸하는 소리가 전철역에 울려퍼진다.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 여성의 시각으로 슬롯를 바라보는 내용이 많았다. 지금부터 40-50년 전의 이야기이니 여성의 가사노동을 당연시했지만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어머니세대들의 고단함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해산바가지
1980년대에는 정부의 산아제한정바카라으로 아이를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운동을 했다. 이야기 속 며느리 역시 워킹맘이라 둘만 낳아 키우겠다고 시어머니에게 얘기하지만 딸만 둘 키운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친구를 대동하고 출산한 며느리의 병실로 그야말로 쳐들어온다.
친구의 비논리적인 아들타령을 듣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친구는 자신이 겪은 출산 경험을 들려준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과부였지만 며느리가 딸넷을 낳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눈치를 주기는 커녕 다섯 번 모두 지극정성으로 산후조리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밤중수유가 끝나면 늘 아기를 재워주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시어머니는 아들내외방의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방을 엿보고 방이 냉골이라며 며느리를 구박한다. 착한 며느리는 신경안정제를 먹다가 요양원까지 알아본다.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과거에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주었던 생각이 나서 맘을 고쳐먹고 이제는 한 번씩 화도 내면서 시어머니를 돌봐드린다.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관계 회복의 열쇠가 된 시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부분은 맘에 와 닿는 표현이 많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 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 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