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버킷리스트: 평일 카페에서 바카라 읽기
퇴사를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시기는 아닌데, 어찌 되었든 그렇게 되었다.
인생이 언제나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숱한 경험으로 체득했기에 놀랍지만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렇다 할 거창한 계획도 없거니와 이왕 넘어진 김에 푹 쉬어 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직하고 나서는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항상 할 일이 있어서 마음의 짐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안전한 환경에서 효능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그곳에선 항상 나의 쓰임을 증명해야 했고, 누군가 나를 따라 하는 걸 방치하는 리더가 있었다. 속이 쓰린 건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몸이 반응하는 거였다.
사실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력서도 업데이트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서류도 있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당장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와보고 싶던 카페에 왔다.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데, 이 정도도 사치라고 생각해서였던가 이제야 왔다.
평일 오전의 카페는 고요하다. 평소 같았으면 빼곡하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 보니 평일이 맞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두 권의 바카라을 팔짱에 끼고 와서 병렬독서를 하고 있다. 밑줄치고 싶은 문장엔 연필 대신 인덱스를 붙여가며 마음에 꾹꾹 눌러 담는다.
이따금 취향인 노래가 나오면 감탄하며 노래를 검색하고, 아 맞다 나 이런 음악 좋아했었지 하며 아침에 틀어보기로 결심한다. 일종의 번아웃이 오면 그 감정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깊숙이 빠졌다가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바카라, 좋아하는 여행지 같은 수단을 이용해서 조금씩 뭍으로 나온다.
오늘의 내가 만들어진 데에는 어떤 우연들이 작용했을까?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는 피천득 시인의 깨끗하고 맑은 생각에 슬롯생활에 찌든 나를 치유해 본다. 누군가를 계속해서 이용하고, 뒤에서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지난 생활. 사람이 없는 고요한 카페에서 미뤄두었던 바카라을 읽으며 생각 정리.
온라인카지노도 개설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사실상 방치해 두었는데 앞으로는 퇴사 후 이루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차곡차곡 다시 올려보려 한다.
꾸준히 나를 발견하고 그날에 충실하면 뭐든 되어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