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위의 꽃잔디

by황인갑


부모님은 평생 자녀를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다 병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에야 가끔 부모님의 위대함과 사랑을 깨닫게 된다.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다가 불현듯 고마움을 알게 되고 아들로서 잘해드리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


이상하게 돌아가신 날짜가 거의 같은 날이다. 두 분 다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했다. 황 씨 선산이 있는 곳에 가묘가 있어서 그곳에 모셨다. 몇 년 전에 잔디를 심었는데 계속 물을 주지 않아서 다음에 가보니 다 죽어 있었다. 오랜 후에 가보니 다시 살아났다.


차에 물통과 장갑 잔디 꽃잔디등 필요한 물품을 싣고 선산이 있는 강진 작천으로 갔다. 전에는 황 씨 재각이 있었는데 고속도로공사로 보상을 받고 철거가 되었다. 바로 그 옆이 선산이다. 전에 잔디를 심을 때는 잔디가 많아서 작은아버지가 트랙터로 실어서 묘지까지 운반해 주었다.


나는 오늘 서울회의가 있어서 가려다가 몸이 좋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 몸이 약하지만 묘소까지 머리 위로 물통을 이고 오르게 되었다. 아내는 부모 묘소에 잔디를 심고 나는 물을 주고 흙을 파서 덮었다. 전에 작은 아버지는 봉분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자고 한다. 그렇게 하면 보기 싫다고 거절했다. 청계에서 작천까지 먼 거리를 몇 번 오갔다. 아내와 딸과 함께 여러 번 가고 앞으로도 더 가게 될 것이다. 이제는 꽃잔디가 빨갛게 피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아내의 수고로 인해 부모님의 묘소가 꽃으로 만발하니 보기가 좋다. 우리는 작천에 갈 때마다 병영 불고기를 먹거나 강진분식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이렇게 며느리가 수고한 것을 알고나 계실까?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지만 자애스러운 모습으로 잘했다고 말할 것 같다. 아내는 아버님 어머님 잘 계셔요 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무덤에 계신 부모님은 말이 없지만 이렇게 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집도 밭도 오직 큰 아들에게만 준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목이 매인다. 아마다 큰 아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물뿌리개로 물을 넉넉하게 주고 왔는데 다음 날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흠뻑 내려 묘지 잔디가 살아날 것을 생각하니 더없이 기쁘다. 날이 건조하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쬘 때는 자주 가서 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부모님 묘소를 보면서 인생은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종종 선산에 올라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70이 가까워진다. 선산 위의 아름다운 꽃잔디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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