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할아버지 요즘 뭐 해?

스타 말고 영웅

by신광훈

올해 아들을 장가보냈다. 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 뒤로 아들 얼굴 보기가 어렵다.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문자는 짧고, 전화는 없다. 바쁜 일정을 핑계삼는 건 아니겠지만, 가족 모임에도 며느리만 오기도 한다. 서운하다고 말하자니 아빠 체면이 서지 않고, 안 서운하다고 하자니 거짓말이다. 요즘은 아들 소식을 며느리에게서 듣는다. 그나마 며느리와는 함께 운동을 하기에 1주일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본다.


그제서야 실감이 난다. 아들은 우리 집 식구라기보다 한 집의 가장이다. 내년에는 딸이 시집을 간다.


아이들이 하나씩 제 집을 찾아 떠난다.


얼마 전 딸을 태우고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딸이 중학생 때 방 벽에 사진을 빼곡하게 붙여 놓고, 소위 '덕질'을 하던 가수였다.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딸은 오히려 내게 묻는다.


"아빠, 이 사람 요즘 뭐 해?"

웃고 넘겼는데, 그 말이 집에 와서도 귓가에 남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도 십 년이면 이렇게 된다. 그렇다면 아빠는 어떨까. 아이들이 제 살림을 꾸리고 십 년쯤 지난 어느 날, 누가 내 안부를 물으면 아이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이 사람을 낙원에서 내보낼 때 선물을 하나 주었단다. 그건 잊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같은 날 악마도 사람에게 저주를 하나 걸었단다. 잊어버리는 버릇이다. 선과 악이 같은 것을 선물했다니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아픈 기억을 흐리게 해 주니 선물이고, 소중한 것까지 흘려보내게 하니 저주다.


그런데 세월은 모든 기억을 똑같이 지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앞의 사람을 우리는 스타라 부르고, 뒤의 사람은 영웅이라 부른다.


스타는 내가 고른 사람이다. 그래서 더 멋진 배우, 더 좋은 노래가 나타나면 마음은 그쪽으로 옮겨 간다. 대신할 사람이 늘 줄을 서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딸의 방 벽에서 사진이 사라진 것도 그 가수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자리를 채울 다른 얼굴이 나타났을 뿐이다.


영웅은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스타와 다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이 더 단단해진다. 신기한 것은 영웅의 기억에서는 흠이 먼저 지워진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이긴 장군이 부하들에게 얼마나 모질었는지, 위대한 작곡가가 집에서는 어떤 남편이었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빛나는 장면만 남는다. 영웅은 거짓이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다.


돌아보면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스타였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두 아이가 달려 나왔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었고,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아들은 내 무릎에 앉아 넥타이를 만지작거렸고, 딸은 내가 고쳐 준 장난감을 마술처럼 여겼다. 그 시절 우리 집에서 나보다 인기 많은 사람은 없었다.


그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아빠보다 재미있는 친구가 생겼고, 아빠보다 많이 아는 선생님이 생겼고, 아빠보다 빨리 답해 주는 인터넷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보다 저를 더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생겼다. 서운하지만 아들 곁의 자리는 이제 며느리의 것이고, 딸 옆에는 곧 남편이 앉아 있을 것이다.


스타의 자리는 원래 그렇게 넘겨주는 자리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에게 영웅이고 싶다. 자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 누구와 견주어 골라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아들에게 아내가 생겼다고 아버지가 밀려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라는 자리는 애초에 대신할 사람이 없는 자리다. 그 자리를 어떤 기억으로 채우느냐가 이제부터 내 몫이다. 사실 이미 50년 넘게 내 몫이었는데, 스타질에 빠져서 영웅이 될 시간을 놓쳤다.


영웅은 매일 무대에 설 필요도 없도 박수를 받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살다가 막막한 순간을 만났을 때, 이럴 때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한 번쯤 떠올려 주는 사람. 내가 바라는 영웅은 딱 그만큼이다.


영웅이 부분의 진실이라는 말이 이제는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나는 좋은 아빠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마흔에 다시 로스쿨 바카라을 붙들던 시절에는 아이들 얼굴보다 바카라상을 더 오래 들여다봤다. 별것 아닌 일로 언성을 높인 날도 많았다. 아이들이 신과 악마의 선물은 그런 기억에 써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좋았던 장면 몇 개만은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갈 것이다. 그 길 끝에서 딸의 손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나면, 딸도 아들처럼 바빠질 것이다. 나는 점점 아이들 사이에서 요즘 뭐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손주가 제 아빠에게, 제 엄마에게 이렇게 물을 날이 올 것이다.


"할아버지는 요즘 뭐 해?"


그때 아들이, 딸이 대답 대신 오래된 장면 하나를 꺼내 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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