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AI (part 1) - 교황이 두려워한 것

어젯밤은 52점 짜리였다

by신광훈

눈을 뜨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켠다. 수면 점수 52점. 깊은 잠 32분, 뒤척임 14회. 코는 골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눈을 뜨면 수면 점수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어젯밤의 내가 숫자로 요약되어 있었다.


52점이면 좋은 점수는 아니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제는 48점이었으니 조금 낫지만, 어쨌든 오늘도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하겠구나'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침대 위에서 일어나자마자 벌써 피곤했다. 샤워기 물을 틀면서 문득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워치가 없었을 때에는 내가 잘 잤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았지? 아니, 궁금해 하기는 했었나? 그러다 여기에 생각이 미쳤다.


잘 잤는지 아닌지를, 나는 왜 나에게 묻지 않고 기계에 물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스마트와치와 핸드폰과 인터넷이 보여주는 나에 대한 정보에 얹혀 살고 있었다. 이들이 숫자는 수면 점수만이 아니다. 손목의 시계는 하루 걸음 수를 센다. 노트북은 집중한 시간과 흐트러진 시간을 나눠 그래프로 그려준다. 나 뿐이 아니다. 누군가는 데이팅 앱이 매긴 등급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누군가는 팔로워 수로 오늘의 자신을 확인한다.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를 데이터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지난 5월, 교황 레오 14세가 발표한 첫 회칙 「매그니피카 휴먼니타스」, 우리말로 '위대한 인간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로 하여금 관계와 친교로 부름받은 인격이 아니라, 최적화되어야 할 프로젝트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4만 단어에 이르는 긴 문서에서, 인간과 AI를 진지하게 고민한 그 서류에서, 문제로 본 것은 AI에 대한 규제도 아니고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도 아니었다. 인간이 스스로를 '프로젝트'로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이 진짜 위기라는 진단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AI를 두고 주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더 안전하게 만들까. 어떻게 규제할까. 일자리는 어떻게 지킬까. 모두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건 전부 'AI를 어떻게 다룰까'에 관한 물음이다. 교황은 시선을 옮긴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그 옆에 선 인간이라고.


인간은 누구인가. 노동하고, 사고하고, 창작하는 존재라고 우리는 배웠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노동하고 사고하고 창작한다. 나보다 능숙하게, 지치지도 않고.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이라 할 것인가. 인간도 AI와 다를 바 없으니, 인간이 특별함을 증명하려 애쓰지 말고 AI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하지만, 회칙의 결론은 달랐다.


회칙의 답은 단정하다. 인간은 효율로 환원되지 않고, 기능으로 측정되지 않으며, 데이터로 압축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AI를 가장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결국 같은 자리에 도착한다는 점이다. AI 활용의 대가로 불리는 이선 몰릭 교수는 『듀얼 브레인』에서, 기술이 어디까지 가든 사람은 여전히 다른 사람과 함께 인간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냉정한 분석과 가장 오래된 신앙의 문서가 같은 결론에 닿는다.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것. 우리는 오래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교황이 가리킨 두려움은 반대편에 있었다. 인간이 기계처럼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잘 잤는지는 내가 제일 잘 하고 내 몸이 가장 잘 안다. 그리고 사실 잘 못 잤다고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걸 왜 핸드폰에게 물어본다는 말인가.


어제 밤 비록 수면 점수는 52점이지만, 오늘 출근길 공기가 좋았고 커피 냄새가 반가웠다. 그거면 충분한 밤이었다. 52점이 아니라 100점짜리 밤이었고, 나는 어젯밤 잘 잤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내 손은 휴대폰을 향할 것을 나는 안다. 궁금하니까. 하지만, 아마도 화면을 켜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물어볼 것이다. 나는 어떤 밤을 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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