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다

by서화

지하철 역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 후문 앞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또랑또랑하고 옹골찬 목소리가 들렸다.

“하이. 형!”

내 고개가 휙 왼쪽으로 돌아갔다.

아파트 입구 가로방향 횡단보도를 건너는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아이를 향한 인사 같았다. 횡단보도 끝에 통통하고 귀여운 남자아이가 킥보드에 한 발을 올리고 서 있었다.

형이라고 불린 아이는 뒤돌아 보며 손을 올려 알은체를 했고 킥보드가 그 뒤로 쪼르르 따라붙으며 물었다.

“왜 요즘 자전거 안타?”


나는 예상과 달리 약속시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걸음으로는 15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지만 바삐 걸어 10분 내로 줄여야만 할 것 같았다.

저벅저벅 내 발자국소리에 그들의 대화는 음소거된 듯 사라졌다.

“그 누나랑 형이 사귄다고 하던데. 형은 착하잖아. 그런데 그 누나는..”


멀어질 줄 알았던 두 사람의 목소리는 내가 향하는 길로 따라 왔고 자동차 엔진소리에 말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소란스러다.

‘형은 착한데 그 누나는 아니라는 거네’

‘도대체 어떤 누나길래 저 꼬맹이가 연애상담 같은 인생조언을 하고 있지’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입이 천천히 벌어지며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길 옆으로 나란히 신호를 받고 있는 승용차들에 닿을 듯 스쳐가면서도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참 당돌한 꼬맹이네'

뭐라 답했을까?

뭐가 그리 걱정스러워 불러 세워 물었을까?

도대체 그 누나의 소문은 무엇이었을까?

‘열 살짜리의 조언이라.. 요즘애들 참 재밌네’






평소 출근시간에도 크게 붐비지 않는 버스정류장에는 바람이 털어낸 쪼그라든 나뭇잎들만 뒹굴고 있었다. 이제 내리막이다. 보폭을 더 짧게 잡으면 더 빠르게 내려갈 수 있다.


자그마한 여자아이 하나가 먼발치에서 걸어 올라온다.

비닐 소재의 직육면체 체육인 가방을 어깨에서 허리로 둘러맸다. 어디 소속인지는 보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운동가방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가볍게 묶어 움직일 때마다 찰랑인다.

오른손으로 가방끈을 잡고 왼손은 앞과 뒤로 크게 흔들며 그 여자아이는 내 옆을 지나갔다. 검은 셔츠의 왼쪽에 주먹만 한 태극기가 선명했다.

‘저렇게 큰 태극기는 무슨 대표단 같은 것 아닌가?’


앞만 보며 씩씩하게 흔들던 팔과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던 긴장과 흥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하. 자랑스럽구나. 자신의 가슴에 있는 태극기가. 태극기가 있는 옷을 입은 자신이.

저 옷을 입고 걸맞은 이벤트에 참석하러 가는 중일 것이다. 바삐 걷다 멈춰 뒤돌아봤다. 벌써 언덕을 넘어갔네.

부디 멋진 하루가 되길





주인과 산바카라하고 있는 털이 짧고 다리가 긴 강아지와 만났다. 종은 모르겠다. 내가 구분할 수 있는 개는 101마리의 달마티안과 치와와등 몇 안된다.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들며 느릿느릿 걷는 주인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었다. 풀이 난 곳마다 들어가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평온한 산바카라을 하며 스쳐갔다.


나도 한때 가족으로 살다간 개가 있었다.

초등생쯤이었을 것이다. 훗날 알게 되었다. 털이 짤고 큰 덩치에 잘생기고 똑똑한 황색 진돗개였다는 것을.

몇 년을 같이 살고도 몰랐다고 질타할 수도 있지만 종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가족인데.


다섯 평 정도 되는 마당 구석, 파란 대문 옆에 하늘색 지붕의 베쓰의 집이 있었다.

덩치에 비하면 마당은 턱없이 좁았다. 그래서인지 베쓰는 한 번씩 집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외출을 감행했었다. 어떻게 목줄을 풀었는지 대문은 또 어찌 열었는지 없어진 베쓰를 찾아 동네를 헤매던 우리 가족들은 매번 난감했다. 알아서 나갔고 알아서 돌아왔었다.


그렇게 좁은 마당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온 날이면 흥분된 감정을 주체를 못 하고 앞뒷집 개들과 컹컹 거리며 대화를 늦은 시간까지 주고받곤 했었다. 아마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개를 만났는지 그래서 다음에 같이 가보자고 약속을 한 것일 수도.


크게 다치는 불상사 없이 늙어간 베쓰는 소담스런 함박눈이 내리던 새벽 자신의 집에서 깨어나질 못했었다. 큰 고통 없이 갔을 거라고 엄마 아빠는 통곡하는 우리들을 위로하셨었다.

꼬리 흔들며 지나가는 개를 보며 베쓰와의 산바카라을 상상했다. 요즘처럼 줄 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잡고 언니가 잡고 동생들이 번갈아 잡아가며 깔깔깔 즐거운 산바카라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지하철역 1번 출구에 다다랐다.

이제 두 번 갈아타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나는 이런 친구가 있다.


1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친구.

4년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 계신 엄마를 위해 해마다 이맘때쯤 미국에서 오는 친구.

여고시절 담임선생님이 여전히 “니 반쪽은 어딨어?”라고 물어봐주시는 친구.

10시간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대화가 목마른 친구.

몇년에 한번 통화를 하던 예전에도 "ㅇㅇ야" 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모든 과거의 시간을 바로 지금으로 끌어당겨버리는 친구.


그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모든 것이 달큼하고 파릇파릇하고 애틋했나 보다.

소년들의 대화, 스치는 아이의 표정, 그리고 너무 흔한 강아지의 산바카라길에서도 그리움을 만나게 하는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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