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요하다. 이 삶의 형태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고요하고 조용한 삶을 예술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과연 삶을 예술로 바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삶을 예술로 바꾸는 행위는 '내가 나를 얼마나 돌보고 있는가'에서 시작된다. 예술을 하려면 도구가 필요하지만, 삶은 별다른 도구 없이 온전히 '의식함'만으로 바뀐다.
"배고픈데 뭐부터 먹을까?"처럼 무의식적인 욕구에 이끌려 하루를 시작할 때가 많지만, 제임스 클리어의 저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나오듯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하는 작은 의식적인 습관이야말로 삶을 예술로 가꾸는 첫걸음이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운동이다. 몸을 움직이겠다는 결단은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운동할 때는 머릿속 잡념이 사라진다. 삶은 고통을 동반하기에 그냥 쉬는 것은 달콤하지 않다. 힘들게 움직인 후의 쉼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삶을 예술로 가꾸는 일은 '싯다르타'만큼의 도(道)에 다다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게르트루트》에 등장하는 쿤은 한쪽 다리의 장애로 바이올린 연주자의 길에서 발목을 잡힐 뻔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간다. 삶을 예술로 가꾸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다듬어 가는 행위 자체도 있지만,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할 줄 아는 영적 성숙이다.
마음가짐이 준비되지 않으면 청소조차 짜증만 날 뿐이다. 문제는 생각이다. 내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꾸준히 의미를 부여해야 삶이 예술이 될 자격을 얻는다. 돌덩어리 안에서 완성된 작품을 상상하는 것이 조각가의 태도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돌덩어리 안에는 조각상이 들어 있다. 조각가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어 그 예술품을 발견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조각가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어 예술품을 찾아내듯, 삶을 예술로 가꾸는 것은 내 안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다듬어 가는 과정이다. 풍요와 윤택함도 좋은 선택지이지만, 나 스스로가 다듬어지지 않았다면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
어쩌면 삶 자체가 수양이다. 하루하루가 쉽지 않고 때로는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고됨을 이겨내고 품격을 갖추는 것이 나와 내 삶을 근사하게 만들어 가는 길이다. 정으로 찍고 망치로 치며 나 자신을 다듬어 가는 고통이야말로 삶을 더 멋지게 만드는 과정이다. 험난함과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지금 더 멋있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