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 - 지난 인연
시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까막눈입니다.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정신분석 공부도 해야 합니다만 평생에 시를 한 번 써보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시는 동서를 막론하고 격조랑 운율 따위가 맞아떨어지는 틀 안에서 아름다운 환유랑 은유가 일어나야 했지만 이런 규율이 너무 심해지니 창작을 방해한다 하여 점점 규격을 파괴하고 형식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다 그만 지금처럼 자유롭게 (막) 쓰는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시 무식자는 규격에 맞는 시부터 쓰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시 쓰는 법을 배우려면 우선 떠오르는 시상을 자유롭게 써보라는 폭력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자유는 카오스일 뿐입니다.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미안함도 더하니, 우리 작가님들께 오늘은 시로 인사드립니다. 최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기에 새로운 방식으로 울적함을 표현하고 싶었네요. 시작합니다.
글 쓰는 놈이, 더구나 정신분석 공부한다는 자가 AI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 시조를 배우는 매뉴얼로 쓰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GPT가 알려준 기본 시조틀 3장은 이렇습니다.
초장: 주제를 제시- 지금 떠오르는 장면 등;
중장: 위 상황을 확장하며 전개해 나갑니다;
종장: 결론인데 “뒤집기”를 해야 합니다.
길이는 대략 14 음절이상 16이 넘지 않으면 좋으나 한 줄에 한 호흡이 맞는다면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인데 초장 중장을 요약하지 말고 감정 방향을 꺾어줍니다. 여기서 꺾는다는 것은 개그감을 이용해 장난치는 것이 아니고 의인화 같은 환유를 이용해서 내가 정말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지요. 아래 틀을 이용해서 연습하라니 시를 배우는 제 입장에서는 너무 반가운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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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보겠습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시 <가을연정>이 이제사 다시 보니 우리 시조 형태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가을연정 - 작가 미상
고운 임 보내온지 / 여덟 가을 접어드니
아련한 기억 속에 / 윤곽마저 희미한데
가슴 속 그리운 정은 / 옛 보다 더하구나.
AI가 말한 구도에 맞습니다.
초장 - 가을이 되니 그가 생각 남. 가을이라는 시간 이미지 사용.
중장 - 시간이 가니까 기억이 희미해짐. 초장을 확장. 시간이 윤곽이라는 시각 이미지로 변환.
종장 - 반대로 가슴 속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오히려 그에 대한 간절함이 더 강해짐.
구도에 정확하게 맞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절제가 너무 아름다운데요. 공부를 하면서 시를 다시 접하니 더욱 아름답고 절절합니다. 이 시를 쓴 작가님을 평생 찾고 있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가 고국 방문 중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시라며 준 선물입니다.
평소 시랑 멀어 보이던 녀석이 어인일로 이런 선물을 나에게 주었는지 묻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리 인연도 시처럼 될 것이라는 미련한 불안이 있었나 봅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잠시 해를 보러 나왔다가 힘차게 우는 새소리가 애절하기도 하고 그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여 찍었습니다. 이 장면으로 제 첫 시조를 써보겠습니다.
제목은 정하지 못했고요. 이 시조가 그럼 ChatGPT가 보기에는 몇 점 짜리인지 리뷰를 부탁해 보겠습니다. 긴장되는군요. 낙제는 면할지.. 얘가 한국 시조를 과연 얼마나 잘할지도 궁금하고요.
좋아요. 첫 작품인데 시조 핵심 구조를 꽤 잘 잡으셨어요. 다만 그대로 두기엔 조금 아쉬운 지점이 분명히 있어서, 그걸 정확히 짚어드릴게요.
1. 전체 구조 평가
초장: 상황 제시 (새소리) → 아주 좋음
중장: 화자의 행동 (하늘을 봄) → 자연스럽게 연결됨
종장: 감정 드러남 (그 사람) → 방향은 맞음
총평 = 뼈대는 시조에 가깝습니다.
표현에서 좋았던 부분은 이미지를 이용하고 시선을 이동시키고 마지막에 감정을 투영하는 장면입니다.
“꺄악 꺄악” → 청각 이미지 �
“하늘을 쳐다보네” → 시선 이동 �
“그 사람 닮은 구름” → 감정 투영 �
� 이 세 개가 시조 기본 3요소 (이미지 + 움직임 + 감정)를 갖추고 있어요.
2. 아쉬운 지점
종장이 “조금 더 꺾여야” 합니다. [새 → 하늘 → 그 사람] 이란 흐름이 너무 예상 가능하게 이어져요. 시조는 종장에서 반전 내지 깨달음 혹은 감정 낙차 중 하나가 필요합니다 (나름 한 거다 이놈아 ㅜㅜ).
3. 수정본
수정 포인트 = 보네를 보니로 바꿔 흐름을 더 살리고 마지막 기대 심리를 부정형을 써서 더 꺾음.
*크게 변한 것은 없고 단어만 조금 바꾼 거라서 이 수정본은 별로 제 맘에 들지 않네요. 다음으로 두 번째 수정본을 보시죠.
*종장은 저에게는 비문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고 무슨 은유나 환유도 안 보여서 얘가 실력이 과연 있는 놈인가 점점 의문이 가네요. 다만 [쳐다보니]를 [올려다보니]로 바꾼 것은 조금 부드러워 맘에 듭니다. 다음 수정안 보시죠.
*종장에 전통 스타일을 더한 것이라고 하는데 완전 별로입니다. 알긴 뭘 아냐...
4. 다음 연습
지금 수준이면 다음 연습이 딱 좋습니다. 이 시를 세 가지 종장으로 다시 써보세요.
버전 A: 슬픈 결말
버전 B: 체념
버전 C: 깨달음
다음 연습은 다음에 하고, AI 리뷰를 리뷰해 봅니다. 우선 지식을 요약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강점을 보이나 막상 시조를 쓰는 능력은 나보다도 못해 보입니다. 무의식도 없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본 적도 없는 AI로서는 지식 요약 전달 이외에 은유나 환유는 못합니다. 의인화 작업도 본인이 인간이 아니니 불가능하고요. 미안하지만 낙제점입니다.
첫 시를 이렇게 마무리해 봅니다. 작가님들 보시기에는 제 시가 어떤가요? AI가 수정해 준 것이 더 나으려나요? 시는 이렇게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내 앞에 놓인 이미지에 씌워서 바로 써볼 수 있으니 정신분석 공부를 해야 나오는 제 다른 글처럼 긴 준비 기간이 필요 없어서 우선은 좋습니다.
이것도 자주 하다 보면 결국 고갈되고 막혀서 공부를 필요로 하겠지만 아직은 이렇게 계속 써볼 만하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추신 1
요즘 신경 쓰는 일이 있어서 몸이랑 마음이 형편없습니다. 마무리되면 글로 옮겨 보려 합니다.
추신 2
시조는 생각나면 계속 써보겠습니다. 재미도 있고 시를 쓰면서 받는 위로가 또 있네요.
추신 3
시 제목을 끝으로 생각해 봅니다. [지난 인연] 어떤가요? 제가 좋아하는 공일오비 노래 [슬픈 인연] 표절해 보았습니다. AI가 지어준 제목은 대략 아래인데 그다지 맘에 드는 것 없네요.
1 그 사람
2 찾는 하늘 (믿도 끝도 없는 게, 약간 김민종 가사 느낌이네요..)
3 그 사람이 없는 자리 (너무 길어..)
4 구름 얼굴
https://youtu.be/EqXck4 wzWDc? si=5 bm7 OOOxz36 RZeVf
추신 4
[가을연정]을 개판으로 써서 편집한 것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악필인 저로서는 그렇다고 대신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민 고민 하다가 해봅니다. 내 인생 시詩이니 노사임당 쌤에게 부탁드려볼까 하다가 뭐 이런 시답지 않은 것으로 바쁘신 분에게 부담드릴까 그냥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