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에 관한 시선
내 손을 바라본다.
손등에 닿은 빛이 반사되어 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다.
너무 짧아 느낄 수 없을 뿐, 내가 보고 있는 손은 이미 아주 조금 전의 손이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본다.
흔들리는 잎에서도 빛은 같은 일을 한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본다.
태양은 지구에서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빛이 그 거리를 건너오는 데 약 8분 20초가 걸린다.
태양에서 더 멀리 시선을 옮기자 시간도 함께 멀어진다.
수십 광년 떨어진 별을 본다는 것은 수십 년 전 그 별을 떠난 빛을 만나는 일이다. 수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를 바라본다면 수백만 년 전의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멀리 바라볼수록 우리는 더 오래전의 시간을 마주한다.
손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태양으로,
태양에서 별로,
별에서 더 먼 우주로.
나는 계속 멀리 바라보았지만 처음부터 같은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리만 달라졌을 뿐,
계속 과거를 보고 있었다.
빛은 분명 시간을 지나 도착한다.
먼 별에서 출발한 빛은 수년, 수백 년, 때로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건너왔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의 언어로 들어가면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물리학에서는 시공간의 경로를 따라 측정되는 시간 간격을 고유시간이라 부른다.
빛이 지나는 경로를 따라 고유시간을 계산하면, 그 값은 0이다.
나는 이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문다.
빛은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오지만,
시간은 빛을 지나가지 못한다.
다시 별을 바라본다.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내는 방법 가운데 연주시차라는 것이 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그 때문에 계절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별의 위치도 달라진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관측하면 가까운 별은 훨씬 먼 배경의 별들에 비해 조금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작은 각도의 차이를 측정하면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별이 움직여서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자리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나는 아주 먼 우주까지 갔다가 다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손을 바라보던 처음의 자리로.
눈앞의 세계는 너무 가까워 그 시차를 느낄 수조차 없다. 하지만 가까움이 현재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빛은 이미 어떤 거리를 지나왔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아무리 짧더라도 지나온 시간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이라는 순간을 눈으로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빛은 도착해 있다.
우리는 도착한 빛을 보고, 그 빛이 지나온 세계를 본다.
그러면서 그 세계 한가운데를 살아간다.
볼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나는 다시 빛 앞에 선다.
처음보다 질문은 명확해지고 대답은 더 어려워졌다.
빛은 시간을 통과하는가.
아니면 시간을 보여주는가.
그리고,
현재는 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낼 수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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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태양-지구 거리와 빛의 도달 시간: 한국천문연구원(KASI) 천문우주지식정보
고유시간(광자의 경우 0이 됨): 위키백과 「고유시간」
연주시차의 원리: 한국천문연구원(KASI) 천문우주지식정보 「연주시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