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글쓰기 100문 100답> 프롤로그
커버 이미지는 AI를 활용한 tvN 유퀴즈 출연한 '가상 AI 이미지'입니다. 이동영 작가는 유퀴즈에 '언젠가' 출연할 예정입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출연한 바가 없음을 밝혀 둡니다.
정답을 빨리 찾으면
1등이 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자기 생각으로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시대입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건 암기가 아닌 질문이고, 정확하게 따져 보는 검증이지요. 검색으로 얻는 지식은 누구나 같습니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서 드러날까요?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서 비롯한 감각과 해석, 정확한 판단으로 드러납니다. 정보를 의심하고 맥락을 읽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습니다. 답은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얻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지 설계하는 건 인간의 깊은 사유에 달린 일이니까요. 글쓰기는 그 사유를 단련하는 무기입니다. 글쓰기의 수준은 곧 생각의 수준입니다.
교육 전문가들이 청소년 시기의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청소년기는 글 쓰는 뇌 영역이 집중적으로 다듬어지는 결정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신경 회로가 활발하게 재편되는 시기인데요. 필요한 연결은 강화되고, 불필요한 연결은 가지치기 되면서 뇌가 더 정교하게 구조화됩니다. 유아기 이후 두 번째로 찾아오는 신경 재편의 황금기. 말랑말랑한 10대 뇌가 가진 높은 신경 가소성 덕분입니다. 글 쓰는 행위가 단순한 표현 활동에 그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혼란한 생각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그것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소통하는 고등 인지 작업이니까요. 이 시기에 이런 뇌 활동을 반복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평생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됩니다. 게다가 지금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고, AI가 초안을 빠르게 다듬어 주는 환경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실험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죠. 그 어느 때보다 글쓰기를 배우고 익히기 좋은 시대, 청소년기라는 적기를 흘려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학교 교육도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중고등학교의 수행평가는 단순한 결과물 제출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 안에서 학생의 사고력과 글쓰기 과정 자체를 평가합니다. 교육부 지침 개정으로 서술형·논술형 평가의 비중이 확대되었고 정기시험에서도 그 비율이 강화되었죠. 이제 글로 사고를 풀어내는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글 잘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죠. 그러다 보니 이런 질문도 나옵니다.
“글 쓸 때 AI로 하면 되는데, 굳이 혼자 힘들게 쓸 필요가 있나요?”
최근에는 대학에서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어떤 프롬프트를 사용했는지까지 기록하고 평가합니다. AI를 쓰더라도 무엇을 묻고 어떻게 다듬었는지, 그 사유의 과정이 평가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중고등학교 글쓰기 역량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구체적으로 기록되며, 이는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글쓰기의 효용은 시험평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일에서도 필수이니까요. 메시지 하나, 이메일 한 통이 관계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더 명확하게 정리하고 전달합니다. 글쓰기 역량은 보고서와 기획서 작성, 발표 실력으로 이어지며 성인이 되어서도 더 나은 기회를 얻게 하지요.
그런데 막상 학생들을 만난 대학 교수들은 놀랍니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글쓰기 평균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는 겁니다. 기업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학은 교양 글쓰기 교육을 강화했고, 기업 역시 보고서 작성과 커뮤니케이션 역량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사로서 대학과 기업으로부터 글쓰기와 문해력 기본 강의 의뢰를 많이 받으며 그 필요를 직접 체감해 왔습니다. 이건 청소년들이 글쓰기 역량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교육의 공백만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글쓰기가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됐다는 데 있습니다. 검색이 기억을 대신하고, AI가 글까지 대신 써 주는 편리한 시대를 사는 지금의 학생들은 부모·선생님 세대와 다르니까요. 이럴수록 철학적인 접근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자동화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그 도구에 무엇을 시킬지 판단하는 사람의 역량이 더 중요해진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하죠.
이럴 때 글쓰기를 외면한다는 건 표현 수단 하나, 소통 수단 하나를 잃는 데 그치는 게 아닙니다. 생각을 다루는 훈련 자체를 멈추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메리 헤링턴(Mary Harrington)은 뉴욕타임스 기고문 「Thinking Is Becoming a Luxury Good」에서 경고합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미래가 이미 눈앞에 와 있다고요. 저소득층 아이들이 더 오래, 더 통제 없이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어 집중력, 작업기억, 언어 능력에서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건데요. 그에 반해 엘리트 가정은 스마트 기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며 생각하는 힘을 의도적으로 보호한다는 겁니다. 도파민 분비가 불안정한 청소년기에 즉각적 만족을 주는 영상 콘텐츠나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뇌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경고는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 차이가 새로운 형태의 계급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가 경고한 핵심입니다. 부모가 청소년기 자녀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주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AI는 학습한 자료와 실시간 검색 결과를 조합해 문장을 생성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알아서 요약하고 그동안의 패턴을 읽어 알아서 추천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진화했죠. 예약과 구매, 일정 정리 같은 일상적 결정도 점점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 더 편한 쪽으로 돈을 쓰고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덕분에 몸은 편리해졌지만,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경험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크리스틴 로젠(Christine Rosen)은 저서 『경험의 멸종』에서 지적합니다. 오늘의 기술 의존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경험, 장소를 몸으로 기억하는 감각, 생각을 키우는 지루함마저 깎아 먹고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바카라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을 점차 잃어 가는 시대에, 글쓰기는 생각과 감각을 다시 자기 것으로 되찾게 하는 도구로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요. 이런 맥락에서 AI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왜 이 질문이 중요한지, 수많은 답 가운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힘일 것입니다. 막연한 생각을 포착하여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됩니다. 그 성찰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진짜로 원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분별하게 되죠. 글쓰기는 표현하기 전에 사고를 다듬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10년 넘게 글쓰기를 교육하면서 저는 한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의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경험에 있다는 것을요.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본 경험,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 경험, 하나의 생각을 끝까지 밀어 본 경험의 차이 말입니다. 그 경험은 글로 쓰면 쓸수록 쌓입니다.
이 바카라은 제가 전국의 학교와 도서관, 청소년수련관, 지역센터 등 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며 실제로 받은 질문들로 채웠습니다. 포스트잇에 빼곡하게 적힌 질문들, 강의가 끝난 뒤 머뭇머뭇 다가와 조심스럽게 꺼내 놓던 고민, 수업 중 손을 번쩍 들고 용기를 내거나 저항하듯이 물었던 질문들까지. 성인·청소년을 통틀어 1,000회가 넘는 강의를 통해 쌓인 질문들 가운데 가장 자주, 매번 반복된 것들을 주로 편집해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카라은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글쓰기 앞에서 한 번이라도 막막함을 느껴 본 모든 청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성인 강의에서 학부모들로부터 받았던 청소년 자녀의 글쓰기와 독서교육에 관한 질문도 함께 담았으니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각각 다른 강의에서 나온 비슷한 질문에 따라서는 쌤의 답변 내용이 부분적으로 겹치기도 합니다. 편하게 읽히도록 중복은 최대한 편집했는데요. 더러 겹치는 부분이 보인다면 맥락상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바카라을 아이에게 건네기 전에 부모로서, 교사로서 먼저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비행기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듯, 긴급한 글쓰기 교육 역시 그렇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아이를 도울 수 있지요. 청소년기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력을 키우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글쓰기 교육은 그 사고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고, AI 시대에 그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이 바카라이 그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2026년 봄
이동영
교보문고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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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