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이, 마을이라는 말
이스탄불 푸드 투어 - 쾨이, 마을이라는 말
2026년 9월 17일(목), 이스탄불 — 에미뇌뉘(Eminönü)에서 카드쾨이(Kadıköy)까지
이스탄불에서의 첫 저녁은 갈라타 다리(Galata Köprüsü) 아래에서 먹었다. 다리 밑 식당들은 간판만 다를 뿐 손님 눈에는 죄다 똑같이 보이는 구조라서, 가게마다 문 앞에 한 사람씩 세워 둔다. 그중 하나가 내 소매를 붙들고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구글 평점 4.9. 안을 들여다보니 자리가 제법 차 있었고, 나는 그 두 가지를 근거로 걸음을 멈췄다. 상호는 사낫(Sanat), 터키어로 예술이라는 뜻이었다.
생선 수프와 생선 샐러드, 하므시(hamsi) 튀김, 그리고 에페스(Efes) 생맥주 한 잔. 하므시는 흑해에서 나는 앤초비로, 터키에서는 거의 국민 생선 대접을 받는다. 흑해 사람들에게는 노래와 농담의 소재이고 고향의 이름이기도 하다. 위층으로는 트램이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난간에는 낚시꾼들의 줄이 종일 드리워져 있었다.
계산서는 60달러쯤이었고, 마지막에 차이를 달라고하자 홍차와 바클라바세 조각을 같이 내왔다. 계산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터키 식당에서는 이런 것을 이크람(ikram)이라고 부른다. 대접이라는 뜻이다. 계산서를 흔쾌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장사 수완이자, 실제로 몸에 밴 환대이기도 하다. 둘 중 어느 쪽인지 굳이 가려낼 필요는 없었다.
갈라타 다리 아래 레스토랑에서 눈에 보이는 야경.
다음 날 아침, 나는 호텔 일층 카페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둘러앉았다. 푸드 투어였다.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하는 일이다. 가이드는 바흐리 데미르라 자신을 소개하며, 이스탄불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런던에서 삼 년을 살았으며 돌아와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그런데 터키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더라고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식탁 가득 차려진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양도 푸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게 문을 닫고 가이드가 되었다.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는 일이니 일종의 자선 사업이고, 천국이란 게 있다면 자기 자리는 이미 마련돼 있을 거라고 했다.
호텔 바로 앞 로쿰 가게에서 시작했다. 터키의 딜라이트라는 영어 이름으로 알려진 그것의 본래 이름은 로쿰(lokum), 옛말로는 라하트 로쿰(rahat lokum)이고 목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서 이집트 바자, 므스르 차르시스(Mısır Çarşısı)로 들어갔다. 17세기에 모스크 부속 시설로 지어진 실내 시장이고, 향신료와 건과와 로쿰이 산처럼 쌓여 있다. 우리는 향신료를 손끝에 찍어 맛봤고, 바자를 나와 광장 쪽 골목의 치즈 가게에서 아침거리를 샀다. 관광객이 몰리는 바자 안쪽과 현지인이 실제로 장을 보는 바깥 골목은 십 미터 차이인데 온도가 다르다.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시미트를 볼수 있다.
빵은 길가의 붉은 손수레에서 샀다. 참깨를 두껍게 입힌 고리 모양 빵, 시미트(simit)다. 포도 당밀에 담갔다 구워 색이 진하고 단맛이 살짝 돈다. 고리모양으로 비슷한 할카 탈트스(halka tatlısı)도 있다. 하나는 짭짤한 빵이고 하나는 시럽에 흠뻑 담근 과자인데, 이 도시는 같은 모양에 정반대의 맛을 넣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커피집은 유리 진열장 하나가 가게의 전부였다. 간판에는 쾨즈데 카흐베(közde kahve), 숯불 위의 커피라고 적혀 있었다. 청년이 네모난 통에 담긴 달군 모래 속에 제즈베(cezve)를 파묻고 손잡이를 쥔 채 천천히 돌렸다. 쿰다 카흐베(kumda kahve), 모래 속 커피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불에 직접 올리는 것보다 거품이 곱게 올라온다고 했다. 유리 앞에는 봉지들이 늘어서 있었다.
1871년부터 이어졌다는 쿠루카흐베지 메흐메트 에펜디(Kurukahveci Mehmet Efendi), 돌절구에 빻았다는 디벡 카흐베시(dibek kahvesi), 유향수지를 넣은 담라사크즐르(damla sakızlı)와 카르다몬을 넣은 것. 청년은 이 커피를 쿠르드 커피라고 불렀다. 그런데 가이드는 자기 고향인 서쪽 해안 도시에서 이 방식이 유행했다고 했고, 유네스코 문서에는 터키식 커피, 튀르크 카흐베시(Türk kahvesi)로 등재되어 있다. 하나의 잔을 두고 세 개의 이름이 겹친다. 이스탄불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 커피를 쿠르드 커피라 부르는 청년이 뜨거운 모래위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아침 식탁은 길었다. 시장에서 사온 여러가지 올리브와 치즈 그리고, 토마토와 향신료를 넣은 스크램블 에그 메네멘(menemen), 고추 페이스트와 호두와 마늘을 갈아 만든 아주카(acuka), 원래는 가죽 주머니에 넣어 숙성시켰다는 툴룸 페이니리(tulum peyniri), 말안장 밑에 눌러 말리던 데서 이름이 나왔다는 파스트르마(pastırma), 그리고 물소 젖 크림에 꿀을 얹은 발 카이막(bal kaymak). 가이드는 발름 카이마름(balım kaymağım)이 연인끼리 부르는 애칭이라고 했다. 내 꿀, 내 크림. 내차, 차이(çay)는 무한히 나왔다. 커피는 아침이 아니라 식후에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이랬다. 오타와에서 이십오 년을 살다 추위를 피해 멕시코로 옮긴 조 부부. 뮤지컬 컴 프럼 어웨이, 911때 많은 비행기들이 회황해 있던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지금은 멕시코와 플로리다를 오가는 로리 부부. 아내가 보잉에서 일해 따라다닌다는 시애틀 존. 필리핀에서 태어나 1972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은퇴한 간호사와 그 언니 에너벨과 샬럿. 영국에서 태어나 토론토 근교에서 오십 년을 산 존 부부. 세르비아 산간에서 태어나 지금은 독일에서 의사로 일하는 예르카. 태어난 곳과 지금 사는 곳이 일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삼십오년을 살았고, 서울의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이번엔 디렉트로 가는 것이 지루해 일부러 유럽을 경유한다고 말했다. 가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가 딱 중간이네요. 그렇다. 딱 중간이다. 그는 우리 만두와 터키의 만트(mantı)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오후에는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탔다. 갑판 벤치에는 머릿수건을 쓴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에게는 관광이지만 그들에게는 출퇴근길이다. 배가 움직이자 아시아 쪽 능선에 서 있는 것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크림전쟁 때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을 차렸던 셀리미예 병영, 비계를 두르고 보수 중인 모스크의 돔, 그리고 언덕 꼭대기의 369미터짜리 참르자 방송탑, 퀴췩 참르자 TV 라됴 쿨레시. 그 앞을 화물선 한 척이 가로질렀다. 십구세기와 오스만르와 이십일세기가 한 화면에 겹쳐 있었고, 그 사이를 배가 지나 유럽에서 아시아로, 트라캬(Trakya)에서 아나돌루(Anadolu)로 건너갔다. 트라캬는 이 땅에 살던 트라키아 사람들의 이름이고, 아나돌루는 그리스어로 해 뜨는 곳이라는 뜻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보면 해가 늘 저 건너편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쾨이(köy)는 터키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다. 카라쾨이(Karaköy)는 검은 마을, 카드쾨이Kadıköy)는 판관의 마을. 이름이 비슷해 나는 이틀 내내 둘을 혼동했는데, 사실 두 마을 사이에는 대륙이 하나 놓여 있었다.
페리를 타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가는 선상에서.
배에서 내리자마자 들른 곳은 케밥집이었다. 간판에 1867이라고 적혀 있고, 케밥즈 이스켄데르, 이스켄데르 이스켄데로을루 베 에블라틀라르, 이스켄데르와 그 자손들이라는 긴 상호가 붙어 있었다. 창업자가 고기를 수평 꼬챙이 대신 수직으로 세워 굽는 방식을 정착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이름을 딴 이스켄데르 케밥(İskender kebap)은 1996년 터키 특허청에 상표로 등록되었다. 접시는 이렇게 나온다. 바닥에 깐 피데(pide) 조각 위에 얇게 저민 되네르(döner)를 얹고, 토마토 소스와 녹인 버터를 끼얹은 뒤 요구르트 한 덩어리를 올린다. 종업원이 접시를 내려놓고 버터를 한 번 더 부어 준다. 한 집안이 백오십 년 동안 자기 이름을 지키기 위해 결국 특허청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화덕집, 치닐리 타쉬 프른(Çinili Taş Fırın)이 있었다. 얇게 편 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토마토를 얹어 바삭하게 구운 라흐마준(lahmacun)이 나왔다. 흔히 터키식 피자라고 부르지만 정확하지 않다. 파슬리를 얹고 레몬을 짜서 말아 먹었다. 곁들여 나온 아이란(ayran)은 커다란 나무통에서 따라 주는 것이었다. 야이으크 아이란(yayık ayran), 통에서 계속 저어 만드는 방식이라 표면에 거품이 일고 버터 향이 돈다. 마지막에는 시키지도 않은 퀴네페(künefe)가 나왔다. 카다이프(kadayıf)라는 실처럼 가는 반죽 사이에 치즈를 넣고 구리 접시에 눌러 구운 뒤 뜨거울 때 시럽을 붓는 디저트다. 잘록한 허리 모양 유리잔, 인제 벨리 바르닥(ince belli bardak)에 담긴 차도 함께였다. 전날 밤 다리 아래 식당에서 받은 것과 똑같은 인사였다.
관광지 한복판의 생선집과 시장통 화덕집이 손님을 보내는 방식이 같았다.
얇게 편 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토마토를 얹어 바삭하게 구운 라흐마준.
그 시장에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식료품점 오십 곳에 꼽았다는 델리카트슨, 괴즈데 샤르퀴테리(Gözde Şarküteri)가 있었다. 터키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고 벽에 크게 붙여 두었고, 칠판에는 날마다 백 가지 메제(meze)를 만든다고 적혀 있었다. 진열장에는 아침에 배운 이름들이 다시 나타났다. 아주카, 알리 나지크(ali nazik), 하이다리(haydari), 샥슈카(şakşuka), 치 쾨프테(çiğ köfte). 안쪽 진열대에는 수죽(sucuk)이 고리째 매달려 있고 콘야산 치즈와 양가죽 툴룸 치즈, 코윤 툴루무(koyun tulumu)가 놓여 있었다. 내가 먹은 것은 말린 가지에 밥을 채운 쿠루 파틀르잔 돌마스(kuru patlıcan dolması)였다. 여름에 속을 파낸 가지를 처마 밑에 매달아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불려 쓰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저장법이 그대로 요리가 된 경우다. 신문사가 꼽은 대표 메뉴가 바로 그 돌마였다.
절임 가게 앞 커다란 물통에 토캇(Tokat)산 포도잎이 소금물에 잠긴 채 쌓여 있었다. 팻말에는 토캇 살라무라 야프락(Tokat salamura yaprak)이라고 적혀 있었다. 봄에만 나는 연한 잎을 일 년 내내 쓰려고 절여 둔 것이다. 내 눈에는 깻잎을 절여 놓은 것처럼 보였다.
유리 진열장에 양 머리가 줄지어 놓인 가게도 지나쳤다. 머리와 족을 오래 고아 만드는 카페 파차 초르바스(kelle paça çorbası)를 파는 집이다. 새벽까지 문을 열고, 밤새 마신 사람들이 해장으로 먹고 일 나가는 사람들이 아침으로 먹는다. 절임 가게에서는 투르슈 수유(turşu suyu), 그러니까 절임 국물을 컵에 따라 마셨다. 짜고 시고, 역시 해장 음료다. 가이드인 바흐리는 자기는 안 먹지만 어머니는 좋아한다고, 한국인이라하면 아직도 너희는 개고기를 먹는다면서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랄까?
델리카트슨, 괴즈데 샤르퀴테리(Gözde Şarküteri). 정말 많은 식료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절임 가게 계산대 위에서 나는 뜻밖의 것을 보았다. 유리병에 담긴 김치였다. 노란 안내판에 코레 레제티(Kore lezzeti), 한국의 맛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프로바이오틱, 면역력 강화라고 쓰여 있었다. 요리가 아니라 건강식품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병 속의 것은 배추보다 당근과 양배추가 많았고 색도 고춧가루의 붉은빛과는 달랐다. 젓갈이 빠지고 소금물에 잠긴 김치는 당연히 내가 아는 김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천 년 된 절임 전통, 투르슈(turşu)를 가진 도시가 낯선 절임을 자기 문법으로 번역해 받아들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가이드가 만두와 만트를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던 자리와 같은 자리였다.
돌마(dolma)는 채운 것, 사르마(sarma)는 만 것이라는 뜻이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카드쾨이 미디예지시(Kadıköy Midyecisi), 카드쾨이 홍합집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었다. 홍합은 예전 한국에서는 포장마차에 들어가면 일등으로 내어주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아주 친근한 재료다. 홍합 껍데기에 향신료 넣은 밥을 채운 미디예 돌마(midye dolma)를 파는 집이다. 네 가지가 있었다. 클라식(klasik), 스작(sıcak), 소슬루(soslu), 아즐르(acılı). 기본과 데운 것과 소스를 얹은 것과 매운 것이다. 개당 20리라였고 오십 개들이 양동이, 퀴췩 코바(küçük kova)도 팔았다. 백오십 개들이가 메뉴에 있다는 사실이 이 음식의 성격을 말해 준다. 포도잎에 말면 야프락 사르마(yaprak sarma)가 된다.
투어의 마지막은 마도(MADO)였다. 마라시 돈두르마스(Maraş dondurması)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고, 살렙(salep)과 유향수지를 넣어 칼로 썰어야 할 만큼 쫀득한 아이스크림으로 전국에 매장을 낸 체인이다. 접시에는 돈두르마(dondurma) 한 조각과 피스타치오를 채운 바클라바 한 쪽이 나란히 놓였고 그 위에 안텝(Antep) 피스타치오 가루가 뿌려졌다. 뜨겁고 바삭한 것과 차갑고 쫀득한 것을 한입에 먹으라는 구성이다. 아침의 양 머리 수프와 절임 국물이 이 도시가 새벽에 무엇을 먹는지 보여 준다면, 이 접시는 관광객의 혀에 정확히 맞춘 단맛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우산 거리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골목 천장에 색색의 우산을 매달아 둔 구간인데, 나는 그 풍경을 파나마시티 구시가지에서도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2011년 포르투갈 아게다(Águeda)의 한 축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진 설치물이었다. 여행자가 어떤 장면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이미 다른 도시에서 본 적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 실망이라기보다는, 세계가 서로를 카피하며 닮아 간다는 담담한 관찰에 가까웠다. 골목 양옆은 카펫 가게, 할르(halı) 가게였다. 손으로 짠 카펫은 한 장 한 장 다르고, 머리 위의 우산은 세계 어디서나 같았다. 그 두 가지가 같은 골목에 있었다.
골목위로 우산이 즐비한 거리 풍경.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일행들이 노점 앞에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명품 상표가 붙은 가방과 지갑들이었다. 양 머리 수프 앞에서 머뭇거리고 절임 국물 앞에서 인상을 쓰던 사람들이 거기서는 눈이 반짝였다. 사고 싶다고들 했다.
하루 종일 나는 진짜임을 증명하는 여러 방식을 보았다. 벽에 붙인 신문사의 목록, 특허청의 등록 번호, 유네스코의 등재, 프로바이오틱이라는 문구, 그리고 남의 상표. 마지막 것만 가짜라고 부르기에는 나머지도 결국 다른 누군가가 발급한 증명서였다. 진짜를 찾아 떠나온 여행에서 가장 확실하게 지갑이 열리는 순간이 가짜 앞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원한 것이 진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페리는 다시 물을 건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판관의 마을에서 검은 마을 쪽으로. 배 위에서 나는 아침 식탁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전날 밤 다리 아래 식당의 상호는 예술이었고, 그 예술은 삐끼가 내민 휴대폰 화면에서 시작되었다. 이스탄불은 진짜와 번역과 모조가 같은 골목에 나란히 서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이틀 동안 나는 서울과 로스앤젤레스의 정확히 중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