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 더 서운하다

by육아빠휴게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생일





어머니가 2월에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한동안은 어머니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자 해야 할 일이 생겼고, 만나야 할 사람도 생겼다.
어머니가 없는 하루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음력 7월 1일이 왔다.

어머니의 첫 생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도 몰랐고 누나도 몰랐다.
살아 계실 때는 달력에 적어두지 않아도 기억하던 날이었다.
어머니가 떠나고 나니 그날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생일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머니의 첫 생일을 그냥 지나쳤다는 것을

그날 아침 아내가 일찍 일어났다.
주방에서 물소리가 들렸고, 도마 위로 칼질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프라이팬에서는 전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무슨 날인지 묻지 않았다.

나물을 무치고, 불고기를 준비하고, 전을 부쳤다.
음식이 하나둘 식탁에 놓이고 나서야 알았다.
아내가 어머니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누나도 기억하지 못한 날이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딸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첫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생일상을 크게 차리려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날 음식을 해드렸을 거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남았다. 말없이 준비한 음식에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때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나물을 무치는 모습을 보면서,
불고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을 한 장씩 뒤집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어야 했다.

"고마워."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말이 자꾸 늦어진다.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여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넘긴다.

그런데 마음은 말보다 늦게 움직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고마움은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가족이라서 하지 못했던 말




누나와 매형이 도착했다.

식탁에 음식이 놓이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맞은편에 앉았고, 식탁에는 나물과 불고기와 전이 놓여 있었다.
아침부터 준비한 음식이었다.
그때 매형이 음식을 보며 말했다.

"손이 작네."

잠시 뒤 다시 물었다.

"어디서 사 왔어?"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탁 위 음식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나물도 직접 만들었고, 불고기도 준비했다.
전도 아침부터 부쳤다. 무엇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첫 생일을 아내가 기억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고맙다"는 말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는 지나가는 말이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가벼운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의 과정을 알고 있던 사람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도 아무 말하지 못했다.



"고마워."


그 한마디면 됐을 텐데 말하지 못했다.

매형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불편해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아내가 주방에서 움직이던 모습과
식탁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계속 겹쳐졌다.

사람을 서운하게 만드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닐 때가 많다.

가족에게는 더 그렇다.

남이 작은 도움을 주면 고맙다고 말한다.
가족이 해주는 일은 익숙해서 지나친다.
가족이니까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조금 서운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은 말 하나가 마음에 남는다.

한 번은 괜찮다.
두 번도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 마음의 거리가 달라진다.

가족이라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가족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명절이면 만났고 생일이면 함께 밥을 먹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도 어머니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다시 만날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떠나고 나니 달라졌다.

이제는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찾아야 한다.

먼저 연락해야 하고,
먼저 안부를 물어야 하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관계를 놓지 않아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관계를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 관계를 지킨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다름을 남겨둔 채 다시 밥을 먹을 수 있으면 된다.

어쩌면 가족에게도 보통의 관계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워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너무 멀어 서로를 잊지도 않는 거리.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다시 연락할 수 있는 사이.

그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첫 생일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내는 기억했다.

그리고 아침부터 음식을 만들었다.

그날의 음식보다 오래 남은 것은
그 마음에 고맙다는 말을 바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가족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가족이라서 더 조심했어야 했다.

가족이라 더 서운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서 하지 않은 말이 더 오래 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조금 일찍 말해야겠다.

"고마워."

별것 아닌 한마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오래 남게 하니까



#보통의관계 #가족 #서운함 #고맙다말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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