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롤그
며칠 전 휴대폰 연락처를 천천히 내려다봤습니다.
가족, 친구, 거래처, 함께 일했던 사람,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지인까지 수백 개의 이름이 있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늘 특별한 사람, 특별한 인연, 특별한 관계를 꿈꾸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고, 아무 일 없는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 그 평범함을 지켜내는 일이 사실은 가장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시간을 함께 견뎌낸 사람과의 관계"
'지금 이 사람들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살다 보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슬롯에서 동료를 만나고, 결혼을 하며 가족이 생겼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울렸습니다.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시작 됐습니다. 하지만 오래 이어지는 관계는 달랐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대가 생기고, 바카라임이 생기고, 이해관계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관계는 조금씩 어려워졌습니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계약을 앞두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연락도 끊겼습니다. 사업상 관계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반대로 계약이 끝난 뒤에도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표님, 잘 지내시죠?"
짧은 문자 하나였습니다.
그 한마디는 거래보다 사람을 먼저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친구도 비슷합니다.
어릴 때는 이유 없이 만나 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온라인 게임이 생기고, 가정이 생기고, 각자의 삶이 바빠졌습니다. 그리고 만남은 줄었고 연락도 뜸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편한 친구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주 만났지만 금세 멀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보다 마음이 관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해서 시작한 관계였지만, 함께 살아가는 일은 사랑만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있고, 돈이 있고, 아이가 있고, 서로 다른 하루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가장 많이 웃기도 했고, 가장 많이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가족이라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큰 기대를 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기대가 크면 작은 말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상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서운했고, 때로는 실망했고, 때로는 먼저 거리를 두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 제 마음을 먼저 생각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좋은 관계는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선물도 아니었고, 멋진 말도 아니었습니다.
보통은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그리고 기다려 주는 마음, 약속을 지키는 행동, 미안하다는 한마디, 고맙다는 짧은 인사였습니다.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 관계를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해관계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생각하고, 거래에서는 계약을 생각합니다. 또한 친구 사이에도 돈이 오갈 수 있고, 가족 안에도 기대가 생깁니다.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보통의 관계'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산하지 않아도 안부를 묻는 사람,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다시 웃을 수 있는 사람, 힘든 날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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