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깨에 남아 있는 긴장부터 느껴진다. 숨을 들이쉴 때의 미묘한 저항, 발바닥에 남은 피로,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몸의 감각들. 차에서 내리기 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한다. 오늘만큼은 조금 덜 가져가자고.
주차장에서 건물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전날 들었던 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표정,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야기들. 일부러 걸음을 늦춘다. 어제의 감정을 그대로 안고 들어가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아서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나면 잠시 몸이 가벼워진다. 그것이 실제로 덜어진 무게인지 스스로에게 허락한 착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건물 안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달라져도 내부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네모난 복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온도, 인위적인 밝기. 창문이 있지만 하늘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서는 분명 아침이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면 오전과 오후의 경계마저 희미해진다. 시계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공간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온다. 문을 열기 전부터 얼굴이 굳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자에 앉고 나서야 겨우 긴장을 푸는 사람도 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잔뜩 움츠린 어깨, 무릎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어떤 날은 말보다 표정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는 사람 앞에서는 서둘러 질문하지 않는다. 침묵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 같은 의자에 앉아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하루도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몇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오래된 상처를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 무심한 표정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며 웃어넘기던 사람이 어느 순간 말을 멈춘다. 두 손을 맞잡고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다. 그러다 오래 참아온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미뤄두었던 기억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서운함,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상처들이 뒤엉켜 나온다. 어느 것이 시작이었는지, 무엇이 가장 아팠는지 당사자조차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것은 반드시 커다란 사건만은 아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반복되는 무시, 아무리 애써도 인정받지 못했던 순간들이 오랜 시간 마음을 갉아먹는다. 처음에는 상대를 원망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탓하기 시작한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잘못해서,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그런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꺼내는 사람을 만날 때면 그 문장이 몸 안에서 얼마나 오래 굴러다녔을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평가가 어느새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나왔을까. 낮아진 시선과 구부정한 어깨에는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 시간이 배어 있다.
억울함을 털어놓는 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막상 입을 열면 말이 자꾸 엉킨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다가 끝내 입을 다물기도 한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쌓이면 어느 한순간의 상처가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앞에서 말을 아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