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래 머물지 않는

by이엔에프제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얇은 금속판 두 장이 맞물리며 내는 소리는 이 건물에서 가장 단정한 이별 인사처럼 들린다.

손잡이가 없는 벽 앞에 서서 괜히 버튼을 한 번 더 눌러본다. 이미 불이 들어와 있는데도. 불빛은 변하지 않고 내 손만 어색해진다.

누군가 막 걸레질을 한 듯 바닥이 반짝인다. 고무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다. 병원 엘리베이터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최대한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사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다. 몸무게가 줄어든 것처럼, 마음이 얇아진 것처럼.

문이 닫히자 숫자가 천천히 바뀐다. 1에서 2로, 2에서 3으로.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엘리베이터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숨을 고른다. 자기 일을 잘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 같다.

거울 속 얼굴은 생각보다 차분하다. 눈이 붉지도 않고 입술이 떨리지도 않는다. 이럴 때 사람의 얼굴은 종종 배신한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말해 주지 않는다.

거울을 피하듯 시선을 벽으로 옮긴다. 스테인리스 벽에는 희미한 손자국들이 남아 있다. 나보다 먼저 이 엘리베이터를 탔던 사람들. 그들도 어디론가 올라갔을 것이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순간 멈칫한다.

아주 짧은 순간 몸이 공중에 뜬 것처럼 불안해진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발바닥에 힘이 들어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 번 놀란 몸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묵직하게 울리는데 꺼내지 않는다. 지금 꼭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모른다고 해도 당장 바뀔 것은 없다.

층수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딸깍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시간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지나가는 것 같다. 하나씩, 차분하게.


얼마 전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다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좁아서 숨이 막힌다고 했다. 이번에 올라가면 내려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기분 나쁘다고도 했다. 버튼을 누르고도 바로 움직이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이 견디기 힘들다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지금은 웃을 타이밍을 놓친 사람처럼 그 말을 머릿속에 들고 서 있다.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유독 차갑다. 창문도 없고 바람도 없다. 도망칠 틈이 없는 공기다. 숨을 들이마시면 싸늘함이 그대로 몸 안으로 들어온다.

마침내 목적지 층의 숫자가 켜진다.

다른 숫자들과 다르지 않다. 모양도 색도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앞에서 시간이 잠깐 늘어진다. 문이 열리기 직전 손잡이 없는 벽에 손을 댄다. 차갑고 단단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감촉이다.

문이 열리자 공기가 빠르게 흩어진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던 냄새가 복도로 빠져나가고 대신 복도의 냄새가 안으로 밀려든다.

몇 사람이 동시에 내린다. 복도는 엘리베이터 안보다 훨씬 넓다. 발소리가 흩어지고 각자의 방향이 갈라진다. 누군가는 오른쪽으로, 누군가는 왼쪽으로 간다. 조금 전 나와 같은 버튼을 눌렀던 사람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다른 엘리베이터의 도착음이 들린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 계단으로 향하는 사람, 출입문 쪽으로 걷는 사람, 휴대전화를 꺼내는 사람.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겹쳤던 몸들은 금세 서로의 존재를 잊는다.

이곳에서는 늘 이런 식이다.

만남은 짧고 목적은 분명하다.

복도를 따라 걷는다. 바퀴 달린 침대가 지나가고 간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간다. 바닥의 광택은 끊기지 않고 형광등 불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몇 개를 지났는지, 몇 개가 남았는지 세며 걷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엔에프제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상담사로 사람의 마음을 듣고, 마음을 쓰는 작가입니다

2,44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