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와이프

어떻게 그렇게 지 밖에 몰라

by다롬

지난 주, 일본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물론 여행으로, 남편과 둘이서.


나는 프리랜서라지만 남편은 온라인 게임인인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다녀왔냐면, 남편이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쌩퇴사는 아니고, 좋은 기회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퇴사와 새 출발 사이, 우리는 묵은 때를 벗기고 새 아침을 맞이할 준비도 할 겸 겸사겸사 일본에 갔다.


아시아와는 먼 대륙 몇몇곳에서 해외살이를 하는 동안 우리가 가장 그리워했던 여행지는 다름아닌 일본이었는데(특히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나마비루), 지금은 한국에 잠깐 머물지만 언제 또 그 먼 대륙으로 떠날지 모르니 이왕 일본에 가는 거 아쉽지 않게 조금 오래 있다가 오자 했다. 그래서 일주일. 여행 도시는 후쿠오카, 구루메, 구마모토.


그렇게 첫날부터 나는 만취를 해버렸고, 숙취를 안은 채 골골대며 다자이후에 다녀온 여행 둘째날 저녁. '후쿠오카 가볼만한 곳'에 꼭 등장하는 '텐진 지하상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하카타역 근처에서 텐진까지 30분을 걷고, 지하상가를 구경하고, 또 다시 30분을 걸어 숙소 근처로 돌아가는데, 남편과 대화를 하던 나는 문득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기분이 얼얼해졌다. 어떤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 깨달음은 바로,



와. 나 진짜 이기적이네?

이기적

이기적

이기적


원래도 이 단어는 나에게 있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늘, 항상 내가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희생 정신이나 이타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오로지 나 자신밖에 모르고 내가 최고이며 무조건 혼자를 선호하고 주변을 챙길 줄도 모르는 그런, 다정하지 못한 인간.


그래도 나는 결혼 후로 많이 나아졌다 생각했다. 아내가 1순위인 남편과 살고 있으니까. 아무리 결혼했다한들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을 본인과 동등하게, 어쩌면 본인보다 더 우선순위로 두는 그런 희생적인 성격의 남자와 내내 붙어있다.


한몸과 다름없는 부부는 갈수록 얼굴도 닮아간다는데, 성격은 어찌 안 그러리오. 다정한 남편에 동화되어 나를 꽁꽁 감싸고 있던 그 '이기심'도 조금은 풀어지고, 벗겨지지 않았을까, 했다. 깊이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럴 것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후쿠오카의 거리를 걸으며 우리의 미래 계획을 얘기할 때,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아, 나는 아직도 정말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는 것을.


결혼 8년차를 맞이한 딩크 아닌 부부의 대화 주제는 역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까?' 였고, 그 중 메인은 '아이 계획'이었다.


아이를 언제 낳고, 그럼 피임은 언제부터 그만두고, 아니, 그럼 그 전에 일단 정착부터 해야 하고, 근데 그러면 우리 여행이나 일은 어떡하지? 솔직히 여행은 실컷 했으니 이제 좀 놓아도 될 것 같은데, 일은 어떡해? 나는 지금 안그래도 정신없어서 남편도 거의 신경 못쓰는데, 아이가 있으면 내 일을 아예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머릿속 생각은 이런 방향으로 흘렀다. 늘 이런 식이었다.


자유로운 해외살이를 만끽하다 반년 전 한국에 들어와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급 '이미 노산'을 인지했고, 어딘가 불안해졌고, 빨리 낳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알 수 없는 조급함에 시달렸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빨리 낳을까? VS 아니야, 아직은' 고민의 저울이 '빨리 낳을까'쪽으로 슬쩍 기울었었는데, 그러나 결국은 '아니야, 아직은'쪽이라는 걸 이날 여실히 깨달아버렸다.





뭣 하나 희생할 줄 모르고, 내 것이라면 뭣 하나 포기할 줄 모르는 인간. 다정한 남편과 결혼 8년 차를 맞이한 지금도 오직 나밖에 모르는 나의 이기심은 여전히, 한풀도 꺾이지 않았다.


토끼같은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하는 하하호호 화목한 가정 대신 '나', '내 일', '내 미래'만이 줄을 짓는 나의 머릿속, 순간 나는 내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남편을 홱 쳐다봤다.


"나, 이 나이 먹고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기적이지?"

"응?"

"나는 진짜 나밖에 몰라. 이거 어떡하냐. 아무래도 너 결혼 잘못한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황당함에 나는 급기야 남편에게 '님 결혼 잘못하셨음. 이상한 여자 만났음'이라는 말까지 시전해버렸다.


그러자 남편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워워, 진정해' 제스처를 선보였다. 그리고 은은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다희. 그건 당연한 거야. 사람이라면 다 그렇지. 네가 유난하게 이기적이거나 그런 게 아니야."

"..."

"나도 그래. 나도 자신이 없어. 아직은 아닌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우리가 비슷한 게 오히려 다행인 거지."


남편이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입 바른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도 나와 비슷하긴 하니까. 그 역시 한 번도 '아이는 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적 없으며, 일단은! 가정의 주체인 우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다만 남편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의 뇌 지분의 '50%는 본인, 45%는 아내, 5% 나머지'인데 비해 나는 '75% 나, 23% 남편, 2%가 나머지'랄까. 따지고 보면 똑같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나는 정말 나로 점철되어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기적인 인간.


어쩌면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부류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난 진짜 심각해.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대체 언제까지 내 생각만 하고 살 것인가. 고민이 끝이 없다. 2년 후에는 아이를 가지자 했는데, 이런식이면 그게 가능할지도 미지수. 그렇다면 그냥 깔끔하게 '딩크'로 방향을 잡으면 될 것인데,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없는 삶'도 무섭기 때문에. 그냥 이기적인 겁쟁이들.


언젠가 엄마인 친구가 '온전한 내 삶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일단, 애가 좀 클 때까지 나 자신은 좀 놓긴 해야지. 애를 계속 보고 있어야 해. 계속. 한 번도 눈을 못 떼. 자유가 없어. 그러니까 다희야. 지금 일 많이 해-'


혼자 머리를 싸매도, 남편과 함께 머리를 싸매도, 친구들에게 상담을 해도,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결혼하고 뭣 모를 때 아이를 낳았으면 모를까, 나는 지금 너무 머리가 큰 것 같다. 타고난 이기적인 성격 역시 결정 불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래서 어떡하나.


2년 뒤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면, 진짜 어떡하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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