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2세, 아직도 남편은 나를 귀여워한다.

by다롬

아까 온라인카지노에 북토크 공지를 쓰고 난 후 깔끔하게 로그아웃을 했다. 창을 끄고, 한글 파일을 열었다. 곧 마감인 소설, 웹소설 공모전 마감에 맞춰 글을 쓰는데 '아, 전개 생각이 안 나', 무고한 천정을 노려보다 이내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기를 몇 번. 그러다 문득 다시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온라인카지노에 로그인.


오랜만에 남편 얘기를 써보고 싶다. 요즘 3번째 에세이로, <천방지축 결혼생활: 정착 불가, 결혼!>이라는 원고를 새로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안정'의 대표 요소인 '결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함께 세상을 방랑하는 우리 부부의 n번째 모험기를 다룬 '유목형 결혼' 이야기다.


나는 소설, 웹소설, 시나리오, 대본 등등 오만 장르를 쓰면서도, 그 안에서 무한한 세계관을 창조하고 대단한 캐릭터를 만듦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음에도 왜 끝내 '결혼' 이야기로 돌아오려는 걸까? 멀리 볼 필요 없이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남편. 만으로 32살이나 먹어 이제 하루하루 거울 볼 때마다 '아이고, 또 늙었네' 혀를 쯧쯧 차는 아내를 보며 '다희는 20대 초반으로 보이지'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다정하고 다정한 내 남편 때문에, 나는 심신이 지친 날이면 꼭 남편과 결혼 이야기로 돌아오고야 만다.


자, 그래서!


온라인카지노에 오랜만에 쓰는 결혼 이야기의 주제는 다름 아닌 '아내를 귀여워하는 남편'. 이에 대해 누군가는 물음을 띄우실 수 있다.



뭐, 보통 남편이라면 아내를 귀여워하지 않아?


물론 그렇다. 내 주위 부부들을 보면 남편이 필연적으로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내를 무조건적으로 귀여워하는 그런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우리도 그렇다. 어느새 결혼 8년 차인데도 남편은 늘 내 눈치를 보고(사실 왜 그러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나를 귀여워한다.


1993년생, 만으로 32세. 한국 나이로 34세. 하루가 다르게 나이가 깃드는 얼굴과 신체. 고등학생 때부터 어른 취급을 받았던 명백한 노안으로서, 나란 사람은 (특히 외모에) 도통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여자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귀엽다'라는 말을 듣고 산다. 누구로부터? 내 남편으로부터.


"다희는 꼬마지~귀엽잖아."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옆구르기 혹은 뒷구르기를 해서 보나 나는 귀엽지 않다. 절대 귀여운 사람이 아니다. 덩치도 크고. 그러나 남편은 그런다. 날 귀여워한다. 얼마 전, 바로 이틀 전에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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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다.


나는 술을 매우 좋아하고, 남편은 체질상 술이 받지 않아 술을 마시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애주가 고백을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사건이 일어났던 일요일 오후, 나는 술을 마셔 알딸딸했지만 남편은 맨정신이었다. 완전한 맨정신.


우리는 요즘 빠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드라마를 보는 중이었다. 체력 이슈로 전날 라이브로 보지 못하여 일요일 오후에 보게 된 것인데, 나는 이른 저녁을 먹으며 빠질 수 없는 와인 한 잔을 하는 중이었다. 안주는(남편에게는 식사) 라면죽과 소불고기 등등.


"끼약!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올까?"


극 중 오랜 기간 데뷔를 하지 못하고 지망생으로 활동했던 영화감독 지망생 황동만이 마침내 데뷔할 기회를 얻는 장면이 나오자 나는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남편의 다리 위로 발을 착 올렸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내가 술을 마실 때면 자주 그러는 것을 알기에 남편은 바로 상체를 약간 뒤로 넘기며 내 발을 잡을 안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나는 와인을 한 잔 더 마시며, 남편 허벅지에 올린 발을 흥겹게 까딱거렸다.


"와, 박해영 작가님은 진짜 천재가 아닐까?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만드시는 거지? 진짜 너무 좋은데, 너무 벽이 느껴진다. 그거 알아? 박해영 작가님은 작가들의 작가,"


모자무싸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을 또다시 흥얼거렸다. 그런데 순간 발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져 그만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건,


내 발가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남편이었다.


"어이, 악!"


나는 발작하듯 파드득대며 다리를 크게 튕겼다. 너무 놀랐다. 솔직히 이런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사실 꽤 자주) 이건 너무나 예상치 못한 타이밍. 남편의 주바카라이 또 발동한 건가? 하지만 나는 부끄러워 황급히 발을 빼려 했다. 아까 카페 갔다 와서 발 안 씻었다고!


"발에서 코 떼!"

"아니, 왜 이렇게 발톱을 짧게 깎았나 해서. 아프진 않아?


하지만 남편은 굴하지 않고 유심히 내 발톱을 살피는 열의를 보였다. 그의 코는 나의 발가락과 아주 가까웠다. 틈이라고는 없을 정도로.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쪽,


그는 기어이 내 발에 입을 맞췄다.


"이얏! 발에 입을 왜 대!"


관계 중(19)도 아니었다. 뭐, 관계 중일 때면 '그럴 수도 있지' 하겠다. 하지만 그냥 일상. 그냥 오후에 드라마를 보던 평범한 한때. 나는 술을 마시고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남편은 그냥 온전한 맨정신이었다. 맨정신에, 내 발에 뽀뽀를 했다.


"아, 진짜 왜 그래! 발에 뽀뽀하지 마!"

"왜, 귀여운데."


남편은 심드렁히 답하며 다시 허리를 펴고, 내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단적인 에피소드로 파악할 수 있듯, 남편은 나를 아내라기보다는 '애'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귀여워하고, 막 그런다. 나를 귀여워하고, 내 앞에서 본인도 귀여워지고 싶어 한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흠칫하고, '왜 둥둥이(남편 애칭)라고 안 해?'라고 울먹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만 32세, 결혼 8년 차. 아직도 나의 남편은, 동갑내기인 아내를 매일 귀여워한다. 매일 붙어있었던 연애 시기까지 더하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이 남자의 다정함에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꾸만 결혼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 평생 걸려도 갚을 수 없는 다정함에 적응하기 위해서.





이건 어제 카톡.


그냥 이모티콘 하나 쓰고 밥 먹으러 왔다고 하는데도 남자의 반응이 격하다.


과연 이 사람은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나를 귀엽다고 해줄까. 정말 궁금해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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