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에 다 들어가지 않는 것들》
목요일이었다.
10월의 첫날이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맑았다.
식탁에는 아내가 차려놓은 아침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내가 먹을 아침이었다.
노란 테두리에 점무늬가 들어간 그릇에는 껍질을 벗긴 삶은 달걀 두 알이 한쪽으로 붙어 있었다. 그 아래 초록 줄무늬 접시에는 아보카도와 껍질째 썬 주황빛 복숭아, 감자와 소고기 몇 점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 한 조각.
빵은 접시에 다 들어가지 못했다.
절반은 접시 가장자리에 걸쳐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회색 식탁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그 빵을 한참 바라봤다.
우리 집 아침에는 가끔 이런 것이 있다.
처음부터 자리가 없었던 게 아니라, 담다 보니 자리가 모자랐던 것들.
그렇다고 누구도 그것을 다시 옮기지 않는다.
그대로 둔다.
먹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조금 삐져나와 있어도 괜찮으니까.
그때 아내가 말했다.
“오늘 기온이 많이 떨어졌으니까 우리 가족 감기 조심하자.”
나는 날씨보다 그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기온이 떨어졌다는 말은 날씨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말 하나가 날씨와 사람 사이에 놓였다.
기온이 떨어졌으니까.
감기 조심해야 하고.
감기 조심해야 하니까.
우리 가족이 건강해야 한다.
별것 아닌 접속사 하나가 하늘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식탁까지 데려왔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내용보다 그 말이 향하는 곳으로 듣는다.
“춥다”는 말은 추위에 관한 말일 수도 있지만,
“추우니까 감기 조심해”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사람이 된다.
오늘 기온이 몇 도였는지는 나중에 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침, 아내가 우리에게 감기 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 가족.
그 말을 생각하다가 식탁을 다시 봤다.
우리 가족은 셋이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
그런데 아침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아내의 하루는 우리보다 먼저 시작된다.
아침 7시 5분.
아내는 약을 먼저 먹는다.
그리고 아들과 내가 먹을 아침을 확인한다.
무엇이 놓였는지 보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핀다.
그다음 자기 아침을 먹는다.
우리와 같은 시간에 먹는 게 아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내가 없는 아침은 생각하기 어렵다.
아내는 식탁에 앉기 전에 이미 식탁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 문장 안에는 셋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
한 끼의 같은 시간에는 둘만 들어가 있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늘 함께 있는 사람이 반드시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밥을 먹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 밥을 먹기 전에 먼저 식탁을 살피고 있다.
사진을 다시 봤다.
달걀 한 알의 끝이 움푹 파여 있었다.
껍질을 벗기는 과정에서 흰자가 조금 떨어져 나간 자리처럼 보였다.
소고기 안쪽에는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고기 위의 머스터드에는 겨자씨 알갱이가 하나씩 보였다.
감자는 표면이 부슬부슬 일어나 있었다.
접시 옆에는 빨간 띠를 두른 스틱 한 포와 노란 캡슐 한 알이 놓여 있었다.
거창한 아침은 아니다.
삶은 달걀.
감자.
아보카도.
과일.
소고기.
빵.
대부분 삶거나 익히고, 껍질을 벗기고, 썰어서 담은 것들이다.
우리 집 부엌에서는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고기 위에 머스터드가 조금 올라갔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식탁 위의 색도 요란하지 않다.
흰색과 초록색.
주황빛과 옅은 노랑.
소고기의 붉은 기와 빵의 검은빛.
재료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색들이 아침 식탁에 그대로 놓여 있다.
그런데 나는 음식보다 자꾸 빵으로 눈이 간다.
접시에 다 들어가지 못한 빵.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확하게 들어가 있는 식탁보다,
하나쯤은 가장자리에서 조금 삐져나온 식탁이 우리 집 같았다.
사람도 그렇기 때문이다.
아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하루가 언제나 준비된 접시처럼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내가 자리를 조금 벗어나 있고,
어떤 날은 아내가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어떤 날은 아들이 밥을 먹으면서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집에서 아침을 시작한다.
완벽하게 맞춰진 식탁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한 식탁 주변에 모여 하루를 시작한다.
4월부터 아침 식탁을 기록해 왔다.
봄에 시작한 기록이 여름을 지나 10월까지 왔다.
달력을 보니 이상하다.
이제 10월이다.
오늘은 이달의 첫 장이다.
앞으로 서른 번의 아침이 더 남아 있다.
그 아침에도 아마 비슷한 것들이 식탁에 올라올 것이다.
달걀이 있을 수도 있고,
감자가 있을 수도 있고,
빵이 또 접시 밖으로 나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똑같은 아침은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오늘과 내일의 기온이 다르고,
아들의 표정이 다르고,
아내가 건네는 말이 다르고,
내가 그날 바라보는 식탁도 다를 테니까.
나는 이 기록이 그런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아침을 먹을 시간조차 빠듯한 사람.
그래도 집밥 한 끼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
화려한 음식보다 재료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달력보다 먼저 식탁에서 계절을 느끼는 사람.
10월 첫날의 계절은 음식으로 오지 않았다.
아내의 말에서 먼저 왔다.
“오늘 기온이 많이 떨어졌으니까 우리 가족 감기 조심하자.”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알았다.
날씨가 바뀌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옷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투일 수도 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걱정하는 목소리.
평소보다 한 번 더 살피는 눈.
그리고 가족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순간.
사진 속 식탁에는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달걀 두 알은 그릇 한쪽에 붙어 있고,
고기 위의 머스터드는 그대로다.
접시 옆에는 빨간 띠와 노란 캡슐이 놓여 있다.
그리고 빵 한 조각은 여전히 접시 밖으로 나와 있다.
다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그 빵을 다시 본다.
아마 오늘도 그대로 먹을 것이다.
접시 밖에 있는 부분부터 집어도 되고,
접시 안쪽부터 먹어도 된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우리 집 아침에는 애초에 모든 것이 접시 안에 들어가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사람도,
시간도,
마음도.
가족이라는 말도 그렇다.
셋이 모두 들어 있지만,
늘 셋이 같은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다.
아내는 먼저 약을 먹고,
우리는 먼저 밥을 먹는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에 시작한 아침이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다시 한 가족의 하루가 된다.
10월의 첫날.
접시에 다 들어가지 못한 빵 하나를 보면서,
나는 가족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큰 그릇이라는 것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