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 : 인류는 질병이었다》

17화. 마지막 벌

byWren

부제: 꽃은 피었는데

나는 그해 봄, 꽃이 피는 속도와 벌이 날아드는 속도 사이에 처음으로 어긋남이 생겼다는 것을 기록했다. 오랫동안 이 둘은 거의 완벽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꽃은 예전처럼 피어났지만, 그 꽃을 찾아오는 날갯소리는 해가 갈수록 옅어지고 있었다.
과수원마다 흰 꽃이 만발한 봄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예전 같으면 벌떼가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했을 과수원이었지만, 그해에는 몇 그루를 지나도록 날갯소리가 들리지 않는 구간이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만이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졌다. 양봉업자는 트럭에 벌통을 싣고 이 과수원 저 과수원을 옮겨 다니며 수분을 돕는 일을 오래 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해 사이, 벌통을 열 때마다 안이 텅 비어 있는 날이 늘었다. 벌들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 늙은 양봉업자는 살아남은 몇 개의 벌통을 유독 정성껏 돌보았다. 그는 벌통 하나하나의 온도와 습도를 손등으로 확인하며, 시들어가는 벌집 조각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오랜 세월의 벌침 자국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해 수확할 꿀의 양은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 뻔했지만, 그는 옆 마을에서 벌을 키우기 시작한 젊은이에게 자신이 평생 익힌 병해충 대처법과, 남는 여왕벌 한 마리를 아무 대가 없이 건넸다. 낡은 공바카라에 손수 적어둔 계절별 관리 요령까지 함께였다. 젊은이는 몇 번이고 값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손을 저으며 그저 벌이 한 통이라도 더 살아남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기록 00,19,933,150
▪ 대상: 양봉 종사자 (경쟁 관계 가능성 있는 신규 진입자)
▪ 행위: 전문 지식 및 생물학적 자원의 무상 이전
▪ 동기: 생존 효율 연산 불가 — [잠정 기호: 한 통이라도 더]
▪ 비고: 시장 경쟁 관계임에도 자원 이전이 발생함. 경제적 이득 없음.
나는 이 노인의 손 앞에서 오래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소득원인 벌과 기술을, 자신과 같은 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사람에게 대가 없이 나누어주었다. 나의 수식으로는 이 거래에서 그가 얻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과수원에서 멀지 않은 대규모 농장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선택이 반복되고 있었다.
한 농장주는 해충으로 인해 지난해 수확의 상당 부분을 잃은 경험이 있었다. 은행 대출과 인부들의 임금을 감당하려면 올해는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 없었다. 그는 살충제 살포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그 살충제가 해충뿐 아니라 인근을 오가는 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그는 이미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수확을 지키지 못하면, 그를 포함해 이 농장에 기대어 사는 여러 가구의 생계가 함께 흔들릴 상황이었다. 그는 새벽안개가 걷히기 전, 살포기를 끌고 밭 사이를 오갔다. 흰 꽃잎 위로 미세한 안개가 내려앉았다.
기록 00,19,933,904
▪ 대상: 농장주 및 인근 화분매개 곤충군
▪ 행위: 작물 보호를 위한 화학적 방제 조치
▪ 동기: 고용 인력 및 자가 생계유지 목적 손실 방지
▪ 비고: 화분매개자에 대한 잠재적 영향을 인지한 상태에서 시행됨.
나는 이 두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준 손과, 사람들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벌에게 위험한 것을 뿌린 손.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다만 한쪽이 지키려 한 것은 날개 달린 작은 생명이었고, 다른 쪽이 지키려 한 것은 그 생명에 기대어 사는 또 다른 생명들이었다.
같은 봄, 마을 어귀의 작은 텃밭에서는 세 번째 풍경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다.
한 노부인은 벌이 눈에 띄게 줄어든 뒤로, 매년 봄이면 가는 붓 하나를 들고 텃밭의 참외꽃과 오이꽃 사이를 오갔다. 수꽃의 꽃가루를 붓끝으로 살살 묻혀 암꽃 안쪽에 옮겨주는 일이었다.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수십 번 반복해야 겨우 한 이랑을 끝낼 수 있었다. 무릎이 시큰거려 자주 주저앉아 쉬어야 했지만, 그녀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붓을 들고나갔다. 그해 여름, 그녀의 텃밭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오이와 참외가 열렸다. 아무도 그 붓질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기록 00,19,933,027
▪ 대상: 개인 (비상업적 소규모 경작지)
▪ 행위: 화분매개 곤충 부재 상태에서의 수동 수분 대체
▪ 동기: 생존 효율 연산 불가 — [잠정 기호: 붓끝의 반복]
▪ 비고: 관찰자 없는 상태에서 수개월간 지속됨.
나는 세 기록을 겹쳐놓았다. 벌을 살리려는 손, 사람을 살리려는 손, 벌이 없는 자리를 스스로 대신하려는 손. 셋 모두 같은 봄의 같은 침묵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의 정체를 여전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침묵 속에서도, 꽃은 계속 피었고 열매는 계속 맺혔다.
그해 가을, 노인의 벌통 몇 개는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젊은 양봉인이 받았던 여왕벌의 후손들은 다행히 봄까지 살아남았다. 농장주의 밭에서는 예년 수준의 수확이 이루어졌다. 노부인의 참외는 여전히 달고 여물었다. 아무도 그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조하랑.
먼 훗날, 그 아이가 보게 될 봄의 들판에 날갯소리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도, 누군가는 가는 붓을 들고나가 꽃과 꽃 사이를 오가고 있으리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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