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누군가로 산다는 것

by제나


손주는 처음부터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오지는 않는다. 몇 분은 지나야 비로소 내 품에 안긴다.

그러고 나면 할머니를 끝도 없이 부른다.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다가도, 뭣 때문인지 못마땅하게 "할~머~니" 하고 늘이기도 한다.

그저 웃기다.


나를 부르는 이름이 많아졌다. 슬롯에서의 관계를 빼고, 가족 안에서만 헤아려도 그렇다.

결혼 전 나는 그저 누구네 막내딸이었고, 오빠들의 귀염 받던 여동생이었다. 처음이라 어색했던, 남편이 부르던 "여보". 시부모님께는 새아기, 시누이에게는 새언니, 손위 형님에게는 동서, 아주버님에게는 제수씨. 내 새언니에게 나는 아가씨였다.


아이가 태어나자 눈을 맞추며 '엄마' 소리를 수없이 들려주었다. 아이 입에서 처음 '엄마'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슴이 울컥 뜨거워졌던 것 같다. 나를 엄마라 부르던 아이가 자라 결혼하니 호칭이 하나 더 늘었다. 며느리가 나를 "어머니"라 부른다.


결혼하고 처음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는 나를 새아기라 부르셨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결혼했다는 벅참보다는 어색하고 얼떨떨했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였는지, 공기마저 조금 무겁게 느껴졌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연로하시다. 내가 아이를 낳자 시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새아기라 부르지 않으셨다. "○○ 에미." 그렇게 바뀐 이름으로 나를 부르셨다.

그 ○○가 결혼해 낳은 아들이, 이제 나를 할머니라 부른다.


돌아보면 호칭의 수만큼 여러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름마다 무게가 다르고 공기가 달랐다. 웃음과 즐거움을 준 이름도 있었지만, 그 앞에서 좌절하고 아프고 슬펐던 날도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것도 많았다.


어느 자리든 처음 맡을 때마다 나는 서툴렀다. 잘하고 있는지 몰라 헤매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날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해낸 것이라기보다, 살아낸 것에 가까웠다.


그 역할들에서 배운 것, 깨달은 것, 웃었던 것, 오래 남은 것을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

어쩌면 평생을 해 온 역할놀이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구의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