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고 싶어요

-그날 우리는 둘씩 손을 잡았다

by제나



"새가 되고 싶어요."


안면도 꽃게다리를 내려오던 길에 손주가 불쑥한 말이다.

손주의 이름은 수호,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다. 12월 말에 태어나 일주일 만에 두 살이 되었으니, 나이는 같아도 또래보다 거의 한 해 늦게 세상에 나온 셈이다. 또래보다 체구는 작지만 기세만큼은 또래에게 밀리지 않으니 다행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과 사돈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수호는 그만큼 큰 기쁨을 안겨 주며 어느새 우리 집의 인기 아이돌이 되었다.




지난여름, 수호를 데리고 안면도로 휴가를 갔다. 며느리는 몸이 좋지 않아 오지 못했고, 아들은 일이 밀려 있어서 남편과 나, 딸이 먼저 수호를 데리고 출발했다. 아들은 일을 마치는 대로 뒤따라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저녁 무렵 아들이 도착했고, 다 함께 저녁을 먹은 뒤 근처에 있는 꽃게다리로 산바카라을 나섰다. 갈매기가 많다기에 새우깡도 한 봉지 사 들었다.

예상대로 갈매기들이 날아와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봉지를 뜯자 기가 막히게 몰려들었다. 수호는 겁이 나는 눈치였다.


그때 남편이 꾀를 냈다. 새우깡을 이쑤시개에 꽂아 수호 손에 쥐여 주고, 그 손을 함께 잡아 하늘로 들어 올린 것이다. 어느새 날아온 갈매기가 새우깡을 낚아채듯 쪼아 갔다. 갈매기들 사이에 소문이라도 난 듯, 이번에는 다리 난간에 줄을 섰다.


맨 앞의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내밀면 물고 날아가고, 그 뒤의 갈매기가, 또 그 뒤의 갈매기가 차례로 다가왔다. 진풍경이었다. 무서움이 조금씩 가신 수호는 나중에는 제 손으로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에게 내밀었다.

한동안 그렇게 놀다 보니 바람이 서늘해지고 날도 어두워졌다. 다리를 내려오는데,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를 올려다보던 수호가 말했다.


"새가 되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남편과 눈이 마주쳤고, 딸과도 눈이 마주쳤다.


"수호, 새가 되고 싶구나. 왜? 날아가고 싶어?"


수호는 별말이 없이

"새가 되고 싶어요."라고 반복했다.


그 짧은 말을 두고 우리끼리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새가 되고 싶을까.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걸까. 자유롭고 싶은 걸까. 그러다 문득, 수호는 그저 새가 되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우리는 그 말에 자꾸 이유를 붙이고 답을 찾아 알려주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상상을 들으면 답부터 찾게 되었을까.

다음에 수호가 또 그런 말을 하면, 답을 찾기보다 맞장구를 치며 다음 말을 이어 가고 싶다.


"수호가 새가 되면 할머니한테 날아와 줄 거야?"


그 대답이 벌써 궁금하다.



계단을 다 내려올 즈음, 한껏 기분이 좋아진 수호가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선생님 놀이였다.


"모두 내 뒤를 따라오세요. 나보다 앞서가면 안 돼요. 두 줄로 서세요!"


우리는 얼른 줄을 섰다. 나는 아들과, 남편은 딸과 나란히 섰다. 그러자 수호가 다시 말했다.


"이제 둘씩 손을 잡으세요!"


졸지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게 되었다.

언제 아들의 손을 잡아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손을 잡지 않게 되었고,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따져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남편과 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제는 한 가정을 꾸린 아들의 손에서 듬직함이 느껴졌다. 아들은 별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묘한 공기가 흘렀다. 조금 어색했지만, 싫지 않은 어색함이었다.


다섯 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손을 잡고 서 있는 우리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났다. 별것 아닌 놀이인데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수호는 그저 선생님 놀이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서로의 손을 잡았다. 다 큰 자식과 부모가 나란히 서서 손을 잡는 일이 이렇게 낯설고도 즐거운 일이었나 싶었다.


수호가 곁에 있으면 웃음이 많아진다. 잊고 지내던 놀이를 다시 하게 되고, 무심히 지나쳤던 가족의 모습도 새롭게 보인다.

손주가 오면 우리는 조금씩 다시 가까워진다.



다음 날 아침,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이 좋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둘째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쌍둥이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전날 저녁 계단 위에서 들려온 수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제 둘씩 손을 잡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