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페르소나의 Ax, 디지털 트윈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들은 앞다투어 Ax(AI Transformation)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Ax는 업무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에 집중되어 있다. 문서를 작성하고 고객을 응대하며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의 혁신에 머물러 있다. 이는 중요한 변화이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AI 시대의 진정한 Ax는 업무가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그 중심에 페르소나가 있다. 페르소나는 단순히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가상의 고객상이 아니다. 한 인간의 행동과 취향, 가치관과 욕망, 습관과 관계가 축적되어 형성된 존재의 패턴이다. 기업은 지금까지 사람을 나이와 성별, 지역과 소득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초개인 시대에는 이러한 구분만으로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

같은 나이,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소비를 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이다. 페르소나는 바로 그 삶의 패턴을 의미한다.


특히 초개인 시대의 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드뢰즈가 말한 리좀적 존재처럼 인간은 관계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생성한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진보정당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성과 중심의 경쟁주의자이지만 가정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집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 자녀 교육에서는 보수적이면서도 문화생활에서는 자유주의적일 수 있다.


초개인(Hyper-Individual)이라 불리는 현대인은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 수많은 페르소나가 중첩된 존재이다. 문제는 이러한 중첩된 페르소나가 인간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과 판단을 반복한다. 온라인 게임의 나와 가정의 나, 온라인의 나와 오프라인의 나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본질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수많은 페르소나와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초개인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다. 자기 인식의 부족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 중심에는 다크데이터의 과다가 있다. 인간은 매일 수많은 생각과 감정, 행동과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험은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우리는 자신의 소비 패턴과 감정 변화, 인간관계의 흐름과 의사결정의 이유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가장 가까운 타인인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의사결정장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선택과 결과가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현재의 판단은 늘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나르시시즘은 현실의 자신보다 스스로 만들어 낸 이상적 자아를 더 많이 신뢰할 때 강화된다. 현대 슬롯에서 증가하는 다양한 심리적 혼란 역시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단절되고 망각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기억으로 존재를 유지한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망각은 인간의 본능이며 왜곡은 인간의 숙명이다. 문제는 초개인 시대가 될수록 인간이 생성하는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정작 인간 스스로 그것을 통합하여 이해하는 능력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현대인은 데이터가 부족해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다크데이터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지털 트윈의 의미가 새롭게 등장한다.


디지털 트윈은 원래 현실의 기계나 공장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는 기술에서 출발하였다. 트지털 트윈을 통해 미래의 공장은 화재나 기계고장, 인사사고 등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AI 시대의 디지털 트윈은 기계를 넘어 인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현실의 내가 움직이면 가상의 나도 함께 움직인다. 현실의 내가 선택하면 가상의 나 역시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건강 정보와 소비 패턴, 이동 경로와 인간관계, 콘텐츠 소비와 감정의 흐름까지 축적되면서 또 하나의 나가 형성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트윈을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미래의 디지털 트윈은 나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AI는 인간의 행동을 기록한다. 디지털 트윈은 인간의 패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패턴은 인간이 생각하는 자신과 실제 행동하는 자신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흩어져 있던 다크데이터가 연결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AI시대, 공장의 디지털트윈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래 사고를 예방하듯, 미래의 인간은 디지털 트윈을 보며 자신을 이해하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의 관점에서도 변화는 크다. 지금까지 기업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게 될 것인지를 예측해야 한다. 건강 데이터는 의료 데이터와 연결되고, 소비 데이터는 가치관 데이터와 연결되며, 반려동물 데이터는 가족 데이터와 연결된다. 인간은 하나의 데이터가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가 중첩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기업의 경쟁력은 상품과 기술에만 있지 않다. 얼마나 정교하게 인간의 페르소나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 페르소나를 얼마나 현실과 가깝게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여 미래의 고객을 예측할 수 있는가에 있다.


여기서 Ax의 의미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Ax는 기업의 업무를 AI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Ax는 인간의 페르소나를 이해하고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된다. 기업은 상품을 판매하는 조직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산업혁명은 기계를 만들었다. 정보혁명은 데이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AI 혁명은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트윈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중첩된 페르소나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 수많은 가면이 존재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욱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게 된다. 디지털 트윈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흩어진 다크데이터를 연결하여 내가 누구였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원하는 존재인지를 비추어 주는 존재의 거울이다.


결국 미래의 디지털 트윈은 페르소나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페르소나 너머의 석가, 칼 융 등이 그토록 찾기를 바랬던 '참자아'를 발견하는 기술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인간 중심 Ax의 종착점이며, AI를 넘어 AGI 시대가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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