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by유림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시간들은 때때로 아름답다.

이를테면, 열정을 가질 만한 일을 찾고 거기에 빠지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를 발견하고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자연에 매료되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랜드 캐년에서 끝이 없을 것 같은 광활함과 압도적인 경관에 경외감을 느낀 적도 있다. 멋진 사람이나 예술품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연인, 배우자, 자식 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역시 아름답게 사로잡히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듯이, 부정적인 생각이나 과도한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또한 공존한다. 이는 권장할 만한 '사로잡힘'이 분명 아니지만, 쉽게 피할 수도 없다. 나는 꽤 오랜 기간 숫자와 의무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렇다고 멈출 동력이 있지도 않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몇 살에는 얼마 정도의 자산을 모으고,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싶으며, 서른 초반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년 차에 승진을 어디까지 하는지 등에 대한 것 말이다. 박사과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4년 내에 박사 학위를 따고, 졸업 전 몇 편의 논문을 출판해야겠다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가득 지배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높은 숫자를 이고지고 산다는 점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늘 바쁘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이 커갈수록 바쁘면 더 바빴지, 여유 있다고 느껴지는 날들은 점점 줄어들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고 볼 수 있고, 숫자나 마감 시점에 강박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조롱 섞인 표현을 갖다 붙여도 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잘 구성된 계획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적어도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살기도 했다. 그렇다, 낙오한다는 불안감보다는 얕은 안도감이 더 편안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곧 공부를 시작하려던 참인데 잔소리한다고 짜증을 내던 철없던 어린 시절 모습부터, 엄마가 해준 반찬들 싹 다 가져가면서 내가 반찬을 해다주는 일은 없었던 것, 내가 힘들면 엄마 힘든 건 생각도 못하고 애들 좀 봐달라고 징징거리면서 친정에 자주 출몰하던 모습까지. 엄마는 나를 처음 동물원에 데려간 날도, 유치원 장기자랑 하는 나를 예쁘게 찍어준 날도 있었다. 재작년 프랑스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는 "왜 이렇게 억척스럽게 사니… 힘들어서 어쩌냐"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이 아프게 스쳐지나갔다.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했어야 했다. 전화도 더 자주 했었어야 했다. 중요한 것들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엄마에게 잘한 것이 없다는 통탄이 매일같이 밀려옴과 동시에 내 자식들도 매일매일 쑥쑥 자라기에, 울면서도 밥을 해야 했다. 엄마의 죽음으로 찾아온 슬픔과 허무함, 공허함, 그런 와중에도 가시적인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조교수로서의 삶,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의무 사이를 맴돌며 반쯤 나사 풀린 사람처럼 지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바스러지기 직전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50년 넘게 보관해온,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 쓴 일기였다. 그걸 들고 다시 프랑스 우리집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열어볼 수 없었다. 한 장 넘겼는데, 내가 엄마를 이렇게나 몰랐네, 하는 슬픔이 더 짙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이 걸렸다. 차분한 마음으로 엄마의 어린 시절 일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두 가지를 생각했다.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바라보는 나를 글로 남겨야겠다는 것이다.




급한 일을 긴급하게 처리할 때, 우리는 성취감과 효능감을 맛보기도 한다. 끝냈다, 하는 안도감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일은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지 정의하고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는 깊은 사고 과정을 요구한다. 왜 중요하지?를 묻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그것만이 중요한가?, 저건 어떤가?, 왜 그런가? 등, 더 깊은 왜, 왜, 왜?가 반드시 수반되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숫자와 의무에 매몰되거나 과도하게 목표 지향적인 경우 중요한 일을 구분할 심적 여유가 없기 일쑤다. 어차피 답이 없는 것 같고, 급한 일들은 우리를 무언가 하는 상태로 만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뭐라도 하는 상태, 바쁜 상태는 우리가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할 일 리스트가 매일 쌓이긴 하지만, 적어도 몇몇은 지울 수 있다는 것 역시 안심을 주기도 한다. 실상 한 자리에서 부유하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급한 일을 긴급하게 처리하면서 바쁘게 살면 어느 순간에는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더 조급해지기 십상이다. 원하는 목표는 보통 장대하나, 거기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종종 엉망진창인 데다가,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터널을 지나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고, 거쳐야 할 일은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처음엔 지름길이나 왕도처럼 보이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내가 응당 써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써야만 할 때가 많다. 즉,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리멸렬하지만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것을 배우고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너무 많으면 따분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러니, 매 순간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목표는 웬일인지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할 일들을 빠르게 지우고 목표를 이루고 싶지만, 지우는 것보다 더 빨리 쌓여서 진이 빠지기도 한다.


급한 일만 하다 보면,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으면, 기존의 것을 '바꿔야만' 한다. 어느 지점까지는 노력하고, 노력하고, 더 노력하는 것이 작동한다. 방향도 맞고 노력도 충분히 했는데, 내 마음 같지 않을 때는 반드시 온다. 그럴 때는 다른 길을 갈 건지, 진짜 맞는 노력을 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하는데, 시간과 숫자에 강박이 있으면 그런 반추의 시간을 잘 쓸 수가 없다. 지금부터 '반성하고 성찰하자'고 해서 몇 분, 몇 시간 내에 결론이 나오질 않는다. 흙탕물의 흙을 다 가라앉히고 맑은 물이 보이면, 그때부터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해서, 맑은 물을 따라낼 건지, 주사기로 뽑아낼 건지, 아니면 버리고 새로 떠 올 건지를 결정하는 것이니, 시간이 필요하다.



예전의 내가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숫자와 마감 시간에 천착했던 건, 측정 가능한 목표를 갖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내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더 가야 하는지, 혹은 가고 싶은지, 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다루지 못했던 시간은 길었고, 그에 따라 시행착오와 좌절, 분노, 방황의 시간도 길었다.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원칙에 따라 타협하거나 결정하고, 부족한 것은 인정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심기일전해서 도전했던 과정들은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도 중요하고, 사는 것이 마음같지 않아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좇아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행착오를 읽고 되풀이하지 않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2025년 봄, 간이식 외에는 엄마를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내가 간이식을 해줄 수 있을지 아산병원에서 검사를 했었다. 결과는 불가능이었는데, 엄마가 갖고 있던 병을 나도 유전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나는 하찮은 급한 일들 때문에 엄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내 남은 평생을 괴롭힐 그 생생한 모자람에 대한 반성이 이 바카라을 쓰도록 이끌었다. 나의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면교사, 혹은 깨달음이 될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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