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믿고 왔니?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나는 왜 여기까지 오려했을까

by바람따라들레

2025년 11월 5일 새벽 4시 30분


모두가 잠든 밤이 지나고, 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르기까지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는 머리로만 고민하지 말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이 고민은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다.



작년 겨울,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아이들이 해외 영어캠프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배우는 아이들의 얼굴은 내가 익숙하게 알던 교실의 표정과는 어딘가 달랐다.


그날 이후, 한국의 교육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정서적으로 밝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소중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어떤 환경을 경험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도 동시에 자라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태국 조기유학을 준비했다.

3개월 동안 자료를 모으고, 입학 인터뷰를 보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모든 선택을 멈추었다.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니 조급했고, 불안했고, 동시에 확신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아이에게 기회를 놓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마음은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불안이기도 했다.

그 조급함 위에서 내리는 선택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어디로 갈까?’가 아니라 ‘나는 왜 가려고 하는 걸까?’


나는 나의 불안과 결핍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나와 아이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심리 상태는 어떤지, 어떤 기질과 성향을 타고났는지,

낯선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상담을 받고 종합심리검사를 진행하며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동시에 나 역시 내 마음을 살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을 받으며 내가 무엇에 불안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아이의 미래’라는 말 속에 어떤 기대와 조급함을 담고 있었는지 천천히 짚어보았다.


그러자 질문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AI가 일상이 되고, 기술이 인간의 일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정답을 빨리 맞히는 능력일까. 아니면 낯선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끝까지 생각해보는 힘일까.

나는 점점 후자에 가까워졌다.


나는 아이를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앞서게 하고 싶은 부모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마주하길 바라는 부모였다.


그렇다면 환경은 달라야 했다.

영어를 빨리 익히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딪히고, 정답보다 질문을 배우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관계를 익히는 공간.

교실과 운동장,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그 환경 속에서라면 아이의 그릇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그릇을 담기 위해서는 엄마의 그릇도 함께 자라야 했다.

아이의 성장을 말하면서 나만 익숙함과 편안함에 머물 수는 없었다.


해외살이와 국제학교는 그래서 목적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그 안에 담고 싶었던 것은 우리 가족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기준이었다.

기준이 없으면 정보는 과잉이 되고,정보가 많을수록 사람은 더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낯선 도시에서 아이들과 내가 어떻게 흔들리고,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조금씩 단단해지는지 그 과정을 솔직하게 남기기 위해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지?’ 그 질문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이 글은 한국 교육을 비방하는 글도, 국제학교를 권하는 글도 아니다.


다만, 뭘 믿고 무슨 용기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기 위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첫날,


생각보다 빨리 현실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