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10월은 마지막 달이 되었다

― 가을의 중턱에서 문득 남은 시간을 생각하다

by담우

10월 1일.

무심코 달력을 보다가 한동안 숫자를 바라보았다.

10월.

벌써 여기까지 와 있었다.

날짜가 가는 줄도 몰랐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아침이 오면 해야 할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접었다.

그렇게 하루를 건너고 또 하루를 건너는 동안
달력은 말없이 몇 장이나 넘어가 있었다.

사람이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시간은 한 번도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가을은 이미 깊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여름의 빛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고,
산은 가장자리부터 색을 바꾸고 있었다.

물빛도 달라졌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작 인간만 그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쓰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조금 여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삶은 생각처럼 쉽게 짐을 내려놓게 해주지 않았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달력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

아, 또 한 계절을 건너왔구나.

젊었을 때 10월은 그저 가을이었다.

단풍이 들고,
하늘이 높아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10월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10월은 시작보다
마무리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달이 되었다.

달력에는 11월과 12월이 남아 있는데도
마음속에서는 벌써 한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10월은 일 년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



자연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나무는 10월이 되면
더 많은 잎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봄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키워온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산은 화려하게 물들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이미 겨울을 받아들이는 체념이 있다.

강도 조금씩 차가워지고,
바람도 몸집을 줄인다.

모두가 멈추기 위해
조용히 자신을 정리한다.

그래서 가을은 아름답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가장 화려하게 물드는 순간이
가장 많이 내려놓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자연을 닮아가는 것일까.

젊었을 때는 봄처럼 무엇인가를 시작하려 했고,
여름처럼 더 많이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10월이라는 숫자가
예전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내게 겨울은 조금 길다.

10월을 지나면 마음은 벌써 한 해를 정리하기 시작하고,
내년 2월쯤까지는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도시는 여전히 바쁘지만,

내 마음의 달력에서는
무언가가 천천히 속도를 낮춘다.

그래서 10월이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올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보다
나는 내 시간을 제대로 살아왔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으며,
이루지 못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삶이 꼭 경제적 자유를 얻은 뒤에야
시작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오늘의 하늘과 오늘의 가을을 놓쳐버린다면,

나는 또 다른 달력 앞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구나.”



10월 1일.

아직 한 해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달력에 남아 있는 날짜와
사람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같은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스무 살의 1년과
지금의 1년은 분명 같은 365일인데,

그 무게도,
그 속도도 다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달력을 조금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창밖의 가을도 바라본다.

하늘도 산도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러면 될 것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헤아리느라
이미 지나온 시간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고,

오지 않은 겨울을 걱정하느라
지금 익어가는 가을을 놓치지 않는 것.

10월은 끝을 알리는 달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가을의 중턱에 서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한 해가 저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계절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10월 1일.

달력 한 장을 넘겼을 뿐인데
오늘따라 그 얇은 종이 한 장의 무게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