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오면 스스로 내려놓는 것들에 대하여
가을이 오면 이상하게 땅을 보며 걷게 된다.
봄에는 고개를 들어 꽃을 보고,
여름에는 짙어진 나뭇잎을 보는데,
가을이 되면 자꾸 발밑을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
갈색으로 반짝이는 밤알을 꽤 많이 주웠다.
밤송이는 이미 제 할 일을 마치고 입을 벌린 뒤였다.
누가 흔들어 떨어뜨리지 않았는데도,
누가 억지로 꺼내지 않았는데도
잘 익은 밤알들은 제때를 알고 나무를 떠나
땅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묵직했다.
햇볕을 받은 밤 껍질은
잘 닦아놓은 오래된 가구처럼 반질반질했다.
그 작은 열매를 바라보다가
오래전에 적어두었던 몇 줄의 글이 떠올랐다.
털털이 안에 빤빤이
빤빤이 안에 떨뜸이
떨뜸이 안에 달콤이
밤은 따는 게 아니라 줍는 거라는 농부의 말,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되새긴다.
짧은 글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때 내가 밤을 주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문장 하나를 주워왔던 것 같다.
“밤은 따는 게 아니라 줍는 거야.”
농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내게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밤송이는 참 이상하다.
겉은 그렇게 사납다.
조금만 잘못 만져도 손끝을 찌른다.
그런데 그 가시투성이 껍질을 벌리고 나면
놀랄 만큼 매끈한 밤알이 나온다.
그래서 그때 나는 밤송이를 보며
‘털털이 안에 빤빤이’라고 썼나 보다.
빤빤한 껍질을 벗기면
다시 얇고 떫은 속껍질이 나온다.
‘빤빤이 안에 떨뜸이.’
그리고 그것까지 벗겨내야
비로소 달고 고소한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떨뜸이 안에 달콤이.’
지금 생각하면 밤 한 알이
사람 사는 모습과 참 닮았다.
사람에게도 가시가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세운 가시도 있고,
살아오면서 저절로 생긴 가시도 있다.
그 안에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반듯하고 매끈한 얼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한 겹 더 벗겨내면
떫고 쓰고 아픈 시간이 숨어 있다.
그런데 사람을 오래 만나보면 알게 된다.
그 떫은 껍질 안에도
의외로 따뜻하고 달콤한 마음 하나가 들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도 밤알처럼
겉만 보고는 다 알 수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 농부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것은
아마 ‘밤’ 때문이 아니라 ‘기다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밤은 충분히 익으면 스스로 떨어진다.
억지로 서둘러 딸 필요가 없다.
햇볕을 받을 만큼 받고,
비를 맞을 만큼 맞고,
여름의 뜨거움을 견딜 만큼 견디고 나면
밤송이는 스스로 입을 연다.
그리고 자신이 품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다.
사람은 그 아래에서 기다렸다가
떨어진 것을 주우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다리는 일을 참 어려워한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먼저 얻고 싶어 하고,
아직 익지 않은 것까지 손을 뻗어 따려고 한다.
일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삶에도
자꾸만 시간을 재촉한다.
“왜 아직 이것밖에 안 되었을까.”
“언제쯤 내 차례가 올까.”
“조금 더 빨리 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아직 익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흔들어 떨어뜨리기도 한다.
젊었을 때는 기다림을 수동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움직이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얻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붙잡아야 할 기회도 있고,
용기를 내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순간도 있다.
하지만 살아보니
모든 것이 노력만으로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일의 결과도 그렇고,
내가 성장하는 속도도 그렇다.
아무리 재촉해도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절 하나를 통과해야 비로소 익는 것이 있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익어가는 시간이었다.
밤나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는 열매가 익고 있었던 것처럼.
그날 밤나무 아래에서 밤알을 몇 개 주우며
이번에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잘 익는다는 것은
단지 달콤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놓을 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나무는 제 열매를 영원히 붙잡고 있지 않는다.
충분히 품었으면 내려놓는다.
밤송이도 때가 되면 입을 벌린다.
어쩌면 성숙한다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가져야 할 것을 아는 것만큼
놓아야 할 것을 아는 것.
사람을 놓고,
욕심을 놓고,
지나간 시간을 놓고,
때로는 오래 붙잡아왔던 자신의 생각까지 내려놓는 것.
그리고 다음 계절을 맞는 것.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더 많이 갖는 방법보다
언제 손을 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손바닥 위에 밤알 몇 개를 올려놓았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어떤 것은 흠집도 나 있었다.
그래도 모두 자기 계절을 지나
스스로 나무에서 내려온 것들이다.
오래전 농부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밤은 따는 게 아니라 줍는 거야.”
그때는 그저 밤을 수확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말인 줄 알았다.
이제 다시 들으니 조금 다르게 들린다.
살다 보면 애써 따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충분히 기다리면
제때 스스로 내 앞에 떨어지는 것들도 있다.
사람도,
기회도,
깨달음도,
어쩌면 행복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니 모든 것을 서둘러 따려고만 하지 않아도 되겠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내 계절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나무 아래에서 기다려보는 것.
그리고 마침내 무엇인가 툭 하고 떨어지는 날,
허리를 숙여 감사한 마음으로 주워드는 것.
그것도 삶을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오래 전의 나는 밤 한 알에서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기다림 속에서 한 가지를 더 본다.
잘 익은 것은 스스로 내려놓을 줄 안다는 것.
가을이 깊어간다.
밤나무 아래에 또 하나의 계절이 떨어져 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그 계절 하나를 조용히 주워든다.